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 뚜렷해진 강달러 현상으로 전세계 외환보유액이 고점 대비 10%인 1조2000억 달러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세계 각국이 치솟는 달러가치에 대비해 통화가치 방어에 안간힘을 쓴 흔적으로 해석된다.
특히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멕시코 등 신흥국들의 외환보유액 감소가 두드러졌다. 무엇보다 세계 최대 외환보유국인 중국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당선 이후 미끄러지던 중국 위안화 가치를 수수방관 내버려두던 중국은 지난주인 1월 6일, 2005년 7월 페그제 폐지 이후 11년만에 처음으로 위안화를 최대 폭으로 절상시켰지만 '약발'은 없이 오히려 역외시장에선 통화 가치가 떨어졌다. 외환시장에선 이번 중국의 통화절상을 '핵폭탄'에 비유할 정도로 극단적인 조치로 해석했지만 이후 중국 외환보유액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3조 달러 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어 중국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8일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전세계 외환보유액은 6일 현재 10조8354억 달러로 2014년 7월 말 기록했던 고점 12조240억 달러보다 9.9%인 1조1886억 달러 줄어들었다. 1년 전에 비해서는 2.6%인 2934억 달러 감소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급감했던 전 세계 외환보유액은 이후 줄곧 늘어났다가 2014년 중반부터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전세계 외환보유액이 감소세로 돌아선 시점은 달러화가 급등하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 유로, 일본 엔, 영국 파운드, 캐나다 달러, 스웨덴 크로나, 스위스 프랑 등 주요 6개 통화에 대비해 달러화 가치를 환산한 달러 지수는 2014년 6월 79에서 등락을 거듭했지만 최근 102선까지 뛰어올라 14년여 만에 최고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외환보유액이 가장 많이 줄어든 국가는 중국이다. 지난 7일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발표한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12월 말 기준 3조105억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2011년 2월 2조9914억 달러 이후 5년10개월 만의 최저수준이다.
중국은 전 세계 외환보유액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세계 최대 외환보유국'이다.
하지만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경제성장 둔화와 중국기업들의 공격적인 해외기업 인수합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인한 '강달러 대세론' 등으로 인한 자본 유출과 정부의 위안화 가치방어가 이어지면서 전고점인 2014년 6월(3조9932억 달러)보다 24%나 쪼그라들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외환보유액 중 중국 비중은 33%에서 28%로 줄어들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외환보유액이 2014년 8월 고점 7312억 달러 대비 27% 급감해 작년 10월말 현재 5339억 달러로 주저앉았다.
사우디는 재정 수입의 약 80%를 차지하는 국제원유 가격 폭락으로 기록적인 재정난에 시달리면서 최근 신흥국 최대 규모의 외채발행에 나섰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당선 이후 통화가치 절하에 비상이 걸린 멕시코와 잇단 테러로 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터키 등도 고점 대비 외환보유액 감소 폭이 컸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9월 말 3778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후 12월 말 현재 3711억 달러로 3개월째 감소했다. 한국 외환보유액 순위는 지난해 10월 홍콩에 밀려 세계 8위로 떨어졌다.
문제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트럼프 정부 출범로 강달러 기조가 예상되고 있어 신흥국들이 환율 방어를 위한 고난의 행군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중국은 지난 6일 변동환율제 도입 이후 처음으로 위안화 가치를 가장 큰 폭인 1% 가까이 절상 고시했지만 시장은 위안화 약세쪽으로 움직였다.역외 위안화 환율은 6일 장중 1% 이상 뛴 달러당 6.8623위안까지 오르면서 약 1년 만에 가장 큰 장중 상승 폭을 보였다.
주요 투자은행들은 위안화가 연내에 달러당 7위안대로 갈 것으로 점치며 역내 시장 환율은 달러당 최고 7.65위안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볼 정도다.
중국이 그동안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글로벌 헤지펀드 등 위안화 베팅 세력과 전쟁에서 승리를 거뒀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가가 꽤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1월 역외시장에서 직접 위안화를 사들이고 외환거래에 제동을 걸면서 위안화 급락을 막았고, 2월에는 조지 소로스 등 미국 대형 헤지펀드 투자자를 환투기 배후세력으로 지목하며 위안화 가치 방어에 나서 사실상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지난해초의 승리가 지속될 지 의문이란 시각이 점점 커지고 있다.
외환전문매체 FX스트리트는 "최근 몇 년이 환율전쟁이었다면 중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한 셈"이라며 "시장은 달러당 7위안이 결국 도래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가 투자은행 35곳의 역내 위안화 환율 전망을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4분기 위안화 환율 전망치 평균값은 달러당 7.10위안이었다. 헤지펀드 BFAM의 벤저민 푹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중국 정부가 환율 단속에 나설수록 위안화 신뢰도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우
중국은 트럼프 당선인이 중국을 상대로 환율조작국 지정도 예고한 상태여서 딜레마에 빠진 처지다. 외환보유액도 중국 당국이 위안화 약세와 자금유출 추세를 막지 못한다면 이르면 이달말 3조 달러 붕괴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임영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