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파장을 일으켰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이민정책이 미국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미 워싱턴주 시애틀 연방 지방법원은 3일(현지시간) 중동 7개국 국적자의 미국 입국과 비자발급을 금지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집행을 잠정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워싱턴주 법무부가 지난 달 30일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이 수정헌법 1조에 위배되며 지역 경제와 이미지에 타격을 주고 있다는 이유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한 것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소송을 주도한 밥 퍼거슨 워싱턴주 법무장관은 "법원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대통령의 의무"라며 "그 누구도 법 위에 있을 수는 없으며 대통령이라 해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로스앤젤레스, 매사추세츠, 미시건, 뉴욕 주 연방 지방법원이 행정명령 시행 직후 공항에 발이 묶인 중동 7개국 출신들이 입국할 수 있도록 일시적으로 행정명령 이행금지 긴급명령을 내린 적은 있지만 행정명령 자체에 대해 전면적인 시행금지를 판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달 27일 이라크 시리아 이란 수단 리비아 소말리아 예멘 7개국 국적자의 미국 입국과 비자발급을 90일간 금지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한 바 있다.
행정명령을 중단시킨 이날 법원의 결정으로 국무부는 이튿날인 4일 취소했던 중동 7개국 국민 비자 6만여개의 효력을 부활시켰다. 국무부 관계자는 "유효한 비자를 소지한 사람들은 미국에 들어올 수 있다"면서 "모든 상황이 행정명령 시행 이전으로 되돌아 간다"고 말했다.
국토안보부도 반이민 행정명령에 따라 취해진 모든 조치를 유보한다고 밝혔다.
각 항공사들에 유효한 비자를 소유한 중동 7개국 출신자들의 미국행 항공기 탑승을 허용하라는 지침이 내려갔으며 중동 주요 항공사인 카타르항공과 에미레이트항공 등이 4일부터 미국행 항공권 발권을 시작했다.
미국 법무부는 즉각 시애틀 연방지법의 결정을 무효로 해달라며 연방 항소법원에 항소장을 냈다. 항소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존 켈리 국토안보부 장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등의 이름으로 작성됐다. 항소장은 반이민 행정명령이 테러리스트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해당 판사에 대한 인신공격을 쏟아내며 비난했다.
플로리다 마라라고 휴양지에서 취임 후 첫 휴가를 보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소위 판사라는 작자가 터무니없는 의견으로 미국의 법 집행을 가로막았다. 그 판결은 곧 뒤집힐 것"이라고 적었다. 이어 "판사가 국토안보부 입국금지 명령을 중단시켜 나쁜 의도를 가진 위험한 사람이 미국에 들어올 수 있게 됐다"며 "정말 끔찍한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판결을 내린 판사는 제임스 로바트 판사로 조지 W.부시 전 대통령 재임 시절에 임명된 연방법원 판사다.
백악관은 이에 앞서 숀 스파이서 대변인 명의로 성명을 내고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법무부가 법원 명령의 효력 정지를 긴급 요청해 합법적이고 적절한 대통령 행정명령을 방어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성명에는 '터무니 없는 법원 결정'이라는 표현이 있었으나 백악관은 이 표현을 뺀 수정 성명서를 재배포했다.
스파이서 대변인은 "이번 대통령 행정명령의 의도는 미국을 지키려는 것"이라며 "대통령은 미국인을 보호할 헌법상 권한과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 후폭풍으로 미국의 여론은 극심하게 분열됐다.
미국 CNN방송과 여론조사기관 ORC가 1월31일부터 2월2일까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 32%는 반이민 행정명령의 대상을 기존 7개국에서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고, 15%는 현재 조치에 찬성했다. 반이민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의견은 53%였다.
미국 CBS방송과 여론조사기관 SSRS의 2월1~2일 공
미국 전역에서 행정명령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졌으며 해외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잇따랐다. 미국은 현재 전국적으로 반이민 행정명령에 대한 50여건의 소송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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