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대 음대에 입학한 A씨. 학창 시절 로망이었던 '과잠(대학 또는 학과별 점퍼)'을 입어보기도 전에 동기들과 함께 '토복'을 먼저 맞춰야했다. 일명 '토복'이란 술을 먹고 토를 할때 토사물을 쉽게 처리하기 위해 걸치는 바람막이 재질의 옷이다. A씨는 "선배들이 신입생 환영회에 참가하는 신입생들에게 '토복'을 맞춰 입으라고 강요했다"며 "옛날 이야기인줄로만 알았는데 아직까지 대학가에 이런 문화가 남아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토로했다.
신입생들에게 토복을 입히고 과음을 강요하는가 하면 억지 장기자랑을 시키는 '악폐습'이 서울대에서도 버젓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서울대 재학생 등의 말을 종합하면, '토복 문화'는 음대의 한 학과에서 수년간 신입생들을 상대로 대물림을 해왔다.
이는 지난달 31일 서울대 익명 페이스북 페이지인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 올라온 '새터 관련 제보'라는 글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 익명의 제보자는 "선배들이 듣도보도 못한 토복을 단체로 맞추도록 하고 과음을 강요하고, 억지로 장기자랑을 시켜 학생들을 놀림거리를 만들었다"고 폭로했다. 그는 "새내기들은 1인당 최소 10개의 개인기를 준비하라는 지시에 버스 안에서 동기들과 가사를 외우기도 했다"며 "열심히 준비해도 재미가 없으면 모욕적인 말을 듣게 되는 등 인권유린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이 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 '토복논쟁'까지 벌어졌다.
실제 매일경제 취재 결과 이 학과에서는 신입생을 상대로 한 갑질 관행이 수년째 이어져왔다. 이달 1~3일 열린 새내기배움터(새터) 행사에도 신입생들은 토복을 입고 참석했다. 음대 학생회 관계자는 "토복으로 불리는 바람막이 옷이 토를 닦아내는 용도로 종종 사용됐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을 뿐"이라며 "올해도 신입생들이 같은 바람막이 옷을 맞췄지만 강압적인 음주 문화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재학생들 증언에 따르면 과도한 음주문화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복수의 재학생들은 "선배에게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술을 마셔야 하고 선배의 이름을 모르면 종이컵에 가득 찬 소주를 '원샷' 했다"며 "과음으로 토를 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원활한 '사후처리'를 위해 '토복'을 입히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관리책임이 있는 학교는 이 같은 악폐습에 사실상 손을 놓은 상태다. 신입생 환영행사가 학생회 주관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관여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음대 학생회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문제제기가 있어왔던 부분에 대해 인정하고 개선안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실제 얼마나 도움이 될 지 의구심을 표하는 눈초리가 많다.
과도한 음주강요와 신고문화는 비단 서울대 음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학을 앞둔 각 대학별 페이스북 커뮤니티에는 '새터 공포증'을 호소하는 새내기들의 고민 글이 쇄도하고 있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위계적인 조직문화와 선배들의 갑질에 공포감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빗나간 악폐습으로 목숨을 잃는 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3월 대전의 한 대학교에서는 선후배 대면식에서 술을 마신 신입생이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대한보건협회는 2006년 이후 10여년간 새 학기 대학생들의 음주 사망자가 23명에 이른다고 파악했다. 취업 포털 인크루트가 대학생 및 직장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는 61.2%의 응답자들이 '대학 시절, 신입생 환영회 등에서 음주를 강요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특유의 서열 문화가 대학에도 스며들어 선배들도 자신이 당한 갑질을 대물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곽금주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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