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선주의'를 기치로 보호무역주의를 천명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해 유럽연합(EU)이 반격을 시작했다. EU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국경세'가 불공정무역에 해당한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계획이다. '마이웨이'를 외치는 미국과 이를 저지하려는 EU의 극한 대립은 '세기의 무역 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3일(현지시간) EU가 트럼프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국경세가 세계 무역 규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WTO 회원국들과 함께 제소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수입품에 관세를 물리고, 수출품은 면세 혜택을 주는 세제가 국제통상의 기초적 규칙에 어긋난다는 게 주요 골자다.
EU의 움직임은 미국의 무역전쟁 '도발'에 대비하는 수순이지만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국경세를 수차례 공언해온데다가 이미 미국 하원에서 법안이 제출된 상황이라 현실화될 공산이 크다.
이같은 움직임은 트럼프 정권과 미국 공화당이 국경세를 포함한 법인세 제도의 전면적인 개혁 과정에서 불거졌다. 미국 정부와 공화당은 미국 수출품에는 세금을 면제하는 대신 수입품에는 과세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국적 기업에 국경세 부과를 겁박하며 미국 내 일자리 창출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실제로 도요타자동차 등 글로벌 기업들이 미국 내 투자를 약속했다.
EU는 트럼프의 국경세 부과 방침은 EU 역내 국가의 투자 부진으로 이어지고, 이는 가뜩이나 어려운 EU 역내 국가들의 침체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 여기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방위의 근간인 북태평양조약기구(NATO)를 비토하는 등 유럽에 공격적인 입장을 밝힌 것도 영향을 줬다. 아울러 EU는 1990년대 미국 정부가 추진했던 수출 환급(리베이트)를 허용 제도를 WTO에 제소해 승소한 경험도 있다.
일단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EU가 실제로 WTO에 제소할 경우 미국이 패소할 것이라는 데 입을 모았다. 미국이 추진하는 새로운 세제가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강화해 세계 무역 시스템의 근간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EU의 통상정책을 총괄하는 이위르키 카테이넨 EU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FT와의 인터뷰에서 "EU는 미국과의 무역 전쟁을 피하고 싶다"면서도 "트럼프의 국경세가 세계 경제에 재앙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그는 "EU는 누군가 우리의 이익과 국제 무역 규칙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에 대비한 대응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다"며 "EU는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하고 있으나 WTO와 같은 세계적인 협약의 일원으로 세계적으로 마련된 규칙을 존중하려 한다"고 제소 의도를 설명했다.
미국이 WTO 제소에서 패소할 경우 최대 3850억달러(약 439조원)의 피해를 볼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WTO 무역 분쟁 전문가인 채드 바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제껏 나온 WTO 분쟁 판결의 최대치보다 100배는 클 것"이라며 "국경세 문제는 일반적인 WTO 분쟁 해결 절차보다 규모가 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이 판결 결과를 무시할 경우 세계 자유무역 보호를 위해 설립된 WTO의 존폐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동안 WTO 분쟁에서 최종 결과는 대부분 패소국이 30억달러 선에서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전문가들이 기존 판결액의 100배로 추산한 것은 EU가 27개국(브렉시트(영국의 EU탈퇴)를 감안해 영국 제외)이라는 '집단소송' 성격을 띠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국경세 문제는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커지고 있다. 월마트 등 내수기업은 국경세 도입을 적극 찬성하는 반면 제너럴일렉트릭(GE)과 같은 수출중심기업은 반대하며 입법 여부를 둘러싸고 치열한 로비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WTO가 마련한 기준이 편향됐다고 지적하며 견제에 나섰다. 미국에 불리한 기준에 대응하려면 국경조정세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은 FT에 "WTO가 대미 교역국에는 유리하고 미국에는 불평등한 규칙을 적용해 미국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공장이 해외로 옮겨갔다"고 주장했다.
미국 의회에서도 국경세를 둘러싼 논쟁은 아직 초기단계이지만
[장원주 기자 /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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