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직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으로부터 도청을 당했다고 주장해 워싱턴 정가를 뒤흔들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주장만 내놓고 있어 자신과 측근들의 러시아 내통 의혹을 '물타기'하기 위한 시도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끔찍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 직전 트럼프타워를 도청했다는 사실을 방금 알게 됐다. 이것이 매카시즘이다"라고 적었다. 이어 "대통령이 유력 대선후보를 도청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닉슨 전 대통령의 워터게이트에 버금가는 사건이다"라고 썼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케빈 루이스 대변인을 통해 "오바마 행정부는 법무부 수사에 관여하거나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어떤 미국인에 대한 사찰도 지시한 적이 없다"며 "그렇지 않았다는 주장은 모두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같은 '메가톤급' 폭로를 하면서도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않아 스스로 신뢰에 상처를 입었다.
워싱턴 정가와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같이 주장한 배경으로 자신의 러시아 내통 의혹을 희석시키려는 시도,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정계 복귀를 견제하기 위한 방어막, 행정부에 남아 있는 오바마 진영 인사들에 대한 경고 등으로 해석했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러시아 내통 의혹을 물타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혼자 주장할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위원회를 통해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 민주당 간사는 "이런 괴상하고 심각한 주장을 내놓으려면 적어도 일말의 증거도 함께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기본을 익히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보기관의 전·현직 관리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정보기관 전직 관료는 "도청 가능성은 매우 작으며 생각할 수 없다. 외국 정보요원의 스파이 행위가 발견되지 않고는 연방판사가 미국 시설에 도청장치 설치를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당인 공화당 상원의원들조차 트럼프 대통령에게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밴 새스 상원의원은 "만약에 도청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추가적인 증거를 공개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구체적인 보고를 받은 것이 아니라 극우 인터넷매체인 브레이트바트뉴스의 '오바마 정부가 트럼프 대선 캠프를 감시해 왔다'는 주장을 과장 해석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편 자신의 트위터에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과거에 함께 찍은 사진을 게재하고 "슈머 의원의 러시아 내통 의혹에 대한 수사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워싱턴 정가에서는 공식 회의석상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난 것과 비밀리에 러시아를 접촉해 제재해제를 논의하고도 위증과 거짓말을 한 것을 구분하지 못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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