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전부터 '안보 무임승차론'을 내걸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 맞서 유럽연합(EU)이 독자방위에 잰걸음을 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에 의존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벗어나 EU 자체 방위를 강화하겠다는 포석이다. 러시아가 크림반도 합병 등 '서진(西進) 정책'을 펴는 와중에 미국의 '핵우산'이 걷혀질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최근 시리아 내전 등 국제사회에서 EU의 존재감이 실종됐다는 내부적 비판에 군사적 강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U는 6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외교·국방 장관회의를 열고 EU 역외에서 이뤄지는 EU의 안보 관련 군사활동을 총괄하기 위한 군 지휘부(MPCC) 창설 계획에 대해 승인했다. 그동안 EU의 군사적 역할 증대를 강력 주장해온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이날 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28개 회원국 외무·국방장관들이 이 계획에 대해 만장일치로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 기구는 자위권 이외의 무력사용이 금지된 말리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소말리아에서의 민·군훈련임무를 관장하게 된다.
또 EU는 중앙 지중해에서 무력을 사용해 유럽으로의 밀입국을 시도하는 밀입국업자를 단속하는 '소피아작전'과 '아프리카 뿔' 지역에서 국제적인 해적소탕 작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애틀랜타작전'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번 결정은 영국이 EU 탈퇴를 결정하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과 유럽간 NATO 안보동맹에 변화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EU가 독자적인 군사활동을 위한 조치에 나서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가 'EU 군(軍)' 창설로 나가려는 첫걸음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오는 14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미·독 정상회담을 앞두고 유럽 정치지도자들 사이에서 'EU 핵무기 프로그램'이 논의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따르면 프랑스가 보유한 핵무기를 유럽 전체 보호에 사용하고, 신설을 추진 중인 연합사령부 산하에 통제권을 두는 것이다. 이 계획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유럽 간 군사적 협조 약화, 러시아의 위협 고조, 미·러 간 관계 개선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둔 것이다.
현재 미국은 독일과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에 수십 개의 핵탄두를 유럽에 대한 핵우산 개념으로 배치하고 있다. EU의 이번 결의안은 핵에 대한 통제권을 미국에서 벗어나 자신의 수중에 두겠다는 의지를 공식적으로 표명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NATO 비판론에 대응해 EU가 독자적인 군 역할 강화에 들어간 것이라는 분석이다
디디에 렝데르 벨기에 외교장관은 MPCC 창설 발표 후 "이것은 첫걸음"이라며 "유럽군이 아마 다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9월 유럽의회 시정연설에서 유럽 방위를 위한 군 지휘부 설립을 제안했다.
[장원주 기자 / 김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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