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환율, 무역, 이민 문제 등을 두고 벌일 담판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오는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미·독 정상회담을 앞두고 특히 양국의 통상전쟁의 전운은 이미 고조되기 시작했다.
대미 무역흑자국인 중국과 멕시코에 대립각을 세웠던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초강경 보호무역주의자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의 독일 견제 발언으로 또 한번 긴장 모드에 돌입했다.
나바로 위원장은 지난 6일 "독일에 대한 무역적자는 미국이 다뤄야할 무역적자 중 가장 힘든게 될 것"이라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미국을 방문하면 미·독간 경제관계 개선에 대해 토론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이 유로화 가치를 큰 폭으로 절하해 미국과 유럽연합(EU) 회원국을 착취하고 있다"고 날을 세우기도 했다.
트럼프 측의 견제구에 가만히 있을 메르켈이 아니다. 독일의 시사주간지인 슈피겔과 미국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앞둔 메르켈 총리는 미국의 국경조정세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위반한 사실상의 보호관세로 규정하고 강력한 맞대응을 경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9월 네번째 총리 연임을 좌우할 총선을 앞두고 있는 메르켈 총리로선 자신과 기독민주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독일의 이익을 강력하게 대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양국 충돌은 피차 타격이 크다는 점에서 메르켈 총리가 강온 양면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슈피겔은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세제개편안에 담을게 유력시되는 국경조정세는 기업들의 수입에 대한 비용공제는 인정하지 않고 수출에는 법인세를 면제해주는게 골자다. 따라서 미국 수출기업은 큰 세금 혜택을 받지만 해외에서 물건을 들여와 미국시장에 파는 수입업체는 세금 폭탄을 맞게 된다. 미국으로선 미국으로 기업을 끌어들이고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이며, 세수를 늘리기 위한 다목적 포석이다.
이에 메르켈 총리는 맞대응 카드를 준비중이다. 미국 기업들이 독일에 수출하는 완제품에 고율의 누진관세를 부과하고 독일 기업들이 미국에서 들여와 조립한 뒤 수출하는 수입 부품에는 세금을 공제해주는 방식이 거론된다. 독일에서 판매되는 미국산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독일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을 제고하겠다는 포석이다.
독일 수출기업이 미국에 낸 국경조정세를 세액공제해주는 방안도 제기된다. 니콜라스 번스 하버드대 교수는 블룸버그에 "미국과 독일간 정상회담은 초기 트럼프 행정부에 있어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법인세 인하 가능성도 살펴볼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의 법인세율은 30%로 미국의 35%에 비해 낮은 수준이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20%로 낮출 움직임을 보이자 이에 대응하고 나설 개연성이 제기된 것이다.
물론 미국과의 통상 불균형을 감안할 때 메르켈 총리가 마냥 우위에 있을 수만은 없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미국의 작년 무역적자는 5023억달러로 이 중 대독일 무역적자는 649억달러에 달했다. 중국, 일본에 이어 독일이 3번째 대미 무역흑자국이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9일 자유무역과 강한 유럽을 지키기 위해 나서겠다면서 결기를 보였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기조에 맞서 유럽연합(EU)이 다른 나라들과 자유무역협정(FTA)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회원국들에 촉구하기도 했다.
나바로 위원장과 함께 트럼프 통상정책의 핵심축인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은 12일(현지시간) 폭스뉴스와 인터뷰하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국경조정세의 잠재적 실행 가능성을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무역과 관련된 일은 매우 복잡하고 하나의 치수가 모두에 맞지 않기 때문에 이런 조치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여지를 뒀다.
이같은 로스의 발언은 미국이 국경조정세 등의 조치를 장기과제로 돌려 사실상 보류한다는 분석도 나오게 했다. 미국과 독일이 통상 맞대결을 벌일 경우 서로 내상이 클 수 있다는 양측의 계산이 두 정상의 회담을 예상외로 부드럽게 만들것이란 짐작도 나오는 이유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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