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트럼프 타워 도청'에 영국 정보기관이 개입됐다며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한 폭스뉴스의 보도에 사실상 동조하는 모습을 보여 미·영 관계까지 위기 국면에 접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8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 영국 정보당국 정부통신본부(GCHQ)까지 동원해 지난해 대선 당시 트럼프 타워를 도청했다는 폭스뉴스의 주장에 트럼프 대통령이 동조하는 입장을 나타내 미국과 영국 관계에 심각한 균열이 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무엇보다도 영국의 GCHQ는 미국이 타국 정보기관 중 가장 가까운 사이를 유지하고 있던 곳이라 상황이 제대로 수습되지 않는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GCHQ가 오바마 전 대통령의 트럼프 타워 도청에 동원됐다는 의혹의 발단은 폭스뉴스의 보도였다. 폭스뉴스의 수석 법률 애널리스트인 앤드루 나폴리나토가 지난 14일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미국 정보기관이 아니라 GCHQ를 도청에 이용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나폴리나토는 익명의 관계자가 관련 정보를 줬다고만 말했을 뿐 정확한 근거도 대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를 더 키운 것은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이었다.
스파이서 대변인은 16일 브리핑에서 폭스뉴스의 보도를 걸러내지 않고 원문 그대로 읽으며 이 주장에 사실상 힘을 실어줬다.
GCHQ는 이에 대해 "말도 안 되는 터무니 없는 주장"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문제가 커질 것을 우려한 스파이서 대변인은 영국 정부 관계자와 통화하고 공식으로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실도 "미국으로부터 이같은 의혹을 다시는 제기하지 않겠다는 확언을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던 논란에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불을 지폈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합동 기자회견에서 한 독일 기자가 이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한 것은 매우 유능한 법조인이 한 말을 인용한 것 뿐"이라며 스파이서 대변인을 두둔했다.
스파이서 대변인도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이 표명되자 다시 "우리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나는 그저 언론에 나온 기사를 읽은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영국과의 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백악관 측의 행동에 공화당 내에서도 반발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도청 주장을 접고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사과하는 선에서 마무리
리처드 래짓 미국 국가안보국(NSA) 부국장도 18일 GCHQ가 트럼프 대통령을 도청에 가담했다는 주장은 "완전 난센스"라며 "이는 정보기관들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생각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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