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안보 문제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협상의 새로운 카드로 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분담금과 경제협정 등에서 EU측이 도저히 양보해줄 기미를 보이지 않자 안보를 지렛대로 삼아 협상력을 높이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유럽연합(EU)측은 메이 총리가 안보를 단순한 협상카드 중 하나로 간주해 EU를 위협하고 있다며 일제히 비판에 나섰다.
가디언의 29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메이 총리는 이날 도날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에 전달한 브렉시트 통보 서한에서 "유럽 안보가 냉전 후 가장 불안한 시기에 양측 협력에 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범죄와 테러 대처가 취약해질 수 있다"고 적었다. 영국이 유럽 안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영국에 유리한 쪽으로 협상을 이끌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다.
영국은 실제로 유럽의 공동경찰 시스템인 유로폴 등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유로폴은 EU의 모든 회원국이 의무적으로 가입돼 있으며 각국의 경찰 및 정보기관이 정보를 공유하도록 하고 있다. 롭 웨인라이트 유로폴 국장에 따르면 영국 정보 기관이 지난 해 유로폴과 협력한 국제 범죄 사건은 3000여 건에 달하며 이는 전년 대비 25%나 증가한 규모다. 그만큼 영국과 유로폴의 관계가 최근 들어 더 깊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시점에서 영국이 유로폴에서 나간다면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메이 총리는 29일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현재와 같은 수준의 안보 협력을 유지하기를 바란다"며 유로폴과 안보 정보교류 등이 협상 패키지의 일부라고 밝혔다. 앰버 루드 영국 내무장관은 한 술 더 떠서 "영국이 유로폴의 최대 기여자"라며 "우리가 떠나면 우리가 가진 정보도 다 가져가겠다"고 협박조로 말했다.
EU측은 메이 총리 정부가 EU에 '협박(blackmail)'을 하고 있다며 즉각 비판했다.
유럽의회의 브렉시트 협상위원인 기 베르호프스타트 벨기에 전 총리는 "안보 분야에서의 영향력을 협상 카드로 쓰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의회에서 사회민주당 그룹을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지아니 피텔라 의원은 메이 총리 정부가 안보를 단순한 협상 카드로 바라보고 있다고 주장하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는 "협상 테이블에서 EU와 영국 시민들의 생명과 직결된 안보 문제를 갖고 장난치면 충격적일 것"이라며 "안보는 모든 시민을 위한 것이지 협상 카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방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미국의 싱크탱크 랜드 연구소도 최근 발표된 보고서에서 "영국이 안보 문제에 있어 EU와 '제로섬 게임'을 펼치려 할 경우 양측의 안보가 모두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메이 총리 측은 EU의 비판이 일자 "절대 협박하려 한 것이 아니다"라며 해명에 나섰지
한편 이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우선 영국과 EU의 관계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난 뒤에 새로운 관계 설정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라며 영국이 분담금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다시한번 강조했다.
[김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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