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남북 대화에 대해 특정한 상황이 전제돼야 한다고 밝혔다.
NBC방송이 12일(현지시간) 방영한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에 좀더 열려 있다"며 "나는 대화하는 것을 개의치 않지만, 특정한 상황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과의 대화를 근본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지만 핵·미사일 도발이 계속되고 미국과 중국의 북한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대화가 적절하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와 달리 자칫 북한과의 섣부른 대화를 시도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상황은 한국이나 일본, 솔직히 말하면 중국과 나머지 국가에도 매우 매우 위험한 일"이라며 "우리는 그간 북한 문제를 단호하게 잘 다뤄왔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을 둘러싸고 문 대통령이 과거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할 가능성이 있다는 미국 정가의 우려가 반영된 대목이다. 미국의 주요 씽크탱크와 언론들은 북한문제가 과거와 상당한 차이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햇볕정책의 부활을 경계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한·미 양국이 대북정책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불협화음 또는 진통 가능성이 예상된다.
미국 언론과 씽크탱크들이 지적하는 북한 관련 과거와 현재의 차이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김정일 전 위원장보다 예측불가능하다는 점, 트럼프정부가 과거 햇볕정책을 묵인했던 부시정부와 다르다는 점, 북한의 핵·미사일 기술이 상당히 진전됐다는 점 등을 꼽고 있다.
백악관과 국무부 등이 밝힌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꼽고 있는 '특정한 상황' 내지 '적절한 상황'은 북한이 핵포기 의사를 분명히 내비치고 실질적인 노력이 입증될 때를 의미한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일련의 발언은 북한과의 대화가능성 보다는 대화를 위한 전제조건에 무게를 더 싣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 기조가 미국의 대북 압박 정책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한 달이나 두 달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더 좋은 답변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북한의 태도변화 또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 기조 확인, 한·미 정상회담 등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상황이 적절하면 영광스럽게 만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한편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와 관련해 백악관은 북한의 도발 소식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즉각 보고하고 강력한 대북제재 이행을 다짐했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13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 사실을 보고받았다"며 "이번 미사일 발사는 일본보다 러시아에 가까운 곳에 영향을 주었다. 러시아가 좋아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기존의 북한 도발에 대한 반응과 달리 러시아를 언급한 것은 한·미·일 동맹은 물론 중국까지 협력해 대북제재에 동참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마저 북한 편에서 돌아설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가중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성명은 또 "미국은 북한의 심각한 위협에 직면한 동맹국들의 편에 서서 철통같이 책무를 다하고 있다"며 "이 같은 도발이 모든 국가가 더 강력한 대북제재를 이행하는 계기가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은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명백하게 위협적인 존재였다"며 "한국과 일본은 우리와 긴밀히 협력하며 이번 일을 지켜보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앞서 미국 재무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들어가는 자금줄을 차단하기 위해 재무부의 테러·금융정보(TFI)와 해외자산통제국(OFAC) 혹은 이와 비슷한 프로그램을 포함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도 북한에 대한 제재와 불법 재정지원을 막기 위해 총체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날 오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하고 북한 미사일 발사를 강력하게 규탄했다.
아베 총리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우리나라에 중대한 위협이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라며 "절대 용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이어 "추가 도발 가능성이 있는 만큼 미국 한국과 연대해 고도의 경계 태세를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북한 미사일이 30분 동안 800km를 비행해 우리 배타적경제수역(EEZ) 밖에 낙하했다"며 중국 베이징 대사관을 통해 북한에 엄중항의하고 규탄했다"고 밝혔다.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은 "북한 미사일 고도가 2000km 이상"이라며 "신형 미사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미국 비영리 과학자단체인 '참여 과학자 모임(UCS)' 소속의 물리학자인 데이비드 라이트는 이번 발사 미사일의 고도가 2000㎞가 넘고 비행시간이 30분에 달한다는 일본 정부 발표를 토대로 정상 사거리는 최대 4500㎞에 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고도가 2000㎞에 달했다는 것은 일부러 발사 각도를 높여서 '고각 발사'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인데 이를 30∼45도의 일반적인 각도로 발사했을 경우에는 사거리가 4500km에 이른다는 것이다.
라이트
[도쿄 = 황형규 특파원 /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