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7월초 태국의 고정환율제 포기와 바트화 폭락에서 촉발된 금융위기가 아시아 전역을 강타한 지 20년이 지났다. 한국과 태국 등 위기를 겪었던 국가들이 금융 시스템을 정비하고 금융안정성을 강화한 가운데 다음번 위기의 방아쇠는 중국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24일 중국의 국가신용등급을 28년만에 처음으로 한 단계 강등(Aa3→A1)했다. 성장률은 둔화되는데 부채가 급증해 재무 건전성이 약화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중국 시나망도 최근 "중국 경제의 현 상황은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직전과 유사하다"고 경고하면서 부동산시장 과열에 따른 가계대출 급등을 주된 이유로 들었다. 중국 집값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아 지난 2010년과 비교해 현재 베이징이 78%, 상하이가 50% 오른 상태다. 이로 인해 주택담보대출 규모가 급증했다. 지난해 하반기엔 전체 대출에서 가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30%로, 상반기와 비교해 두배 가까이 급증했다.
●총부채 규모 10년만에 두배로 급증
최근들어 주요 도시들이 대출규제에 나섰지만 그전까지 중국 정부가 부동산 과열을 묵인한 이유는 경기부양을 위해서라는게 정설이다. 수출과 투자가 저조해 기업들의 성장기여도가 갈수록 줄어들어 그나마 기댈곳은 개인 소비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주도 성장마저 위태로워보인다. 개인들의 소득 증가속도가 대폭 둔화됐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의 소비여력을 보여주는 지표인 실질소득증가율은 2000년대 들어 줄곧 경제성장률을 웃돌다 지난해 처음으로 경제성장률 아래로 떨어졌다. 소득증가율 6.3%로 경제성장률 6.7%를 밑돈 것. 가계대출은 증가하고 소득증가는 둔화되는 상황은 미국의 2008년 '리만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때와 비슷한 모습이다.
기업부채 증가속도는 가계보다 더 위험한 수준이다. 국제금융협회(IIF)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4월 기준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기업, 정부를 합친 총부채 비율은 265%로 작년 말 256%에 비해 9%포인트나 증가했다. 중국의 총부채비율은 2008년 이전에는 140∼150% 선을 유지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두배 120%포인트 폭증했다. 총부채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기업부채다. 중국의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170%에 달한다. 이는 선진국 평균 89%의 2배에 달하는 수준으로 세계 1위다. IIF는 지난 10년간 중국 기업들이 빚에 의존한 투자를 해왔고 특히 국유기업이 군림하는 산업에 과잉공급을 불러왔다고 평가했다.
이들 중 일부가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국유기업에서 국유은행으로 자금압박이 확산되면서 은행 시스템 전체에 위기가 전염될 수 있다. 중국 국유기업들이 빚을 내서 벌이는 과잉투자의 대표적인 사례는 초고층 빌딩 건설이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전세계에서 건설중인 200m이상 초고층 빌딩은 총 130여개이고, 이 가운데 중국이 80여개를 차지해 압도적인 1위다. 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는 지난달 수도 베이징 인근에 상하이 푸동지구에 버금가는 경제특구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10년안에 서울면적의 3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신도시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이런 대규모 개발사업은 대부분 국유기업들이 국유은행에서 자금을 대출하는 구조로 시행된다. 이미 기업부채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상황에서 대규모 개발사업은 민간의 주택버블과 함께 위기의 시계를 앞당길 수 있다.
외환시장도 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때 4조달러에 육박하던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현재 3조달러에 턱걸이한 상태다.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많지만, 현재와 같은 외자유입 감소세와 미국의 금리인상이 이어질 경우 올해 안에 2조5000억달러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은 지난 2015년말부터 지난해초까지 4개월간 외환보유액이 무려 3000억달러 급감한 뒤 자본통제를 강화했다. 하지만 자본유출 뿐 아니라 자본유입도 줄어 중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 증가율은 올들어 4월까지 전년 동기대비 -0.1%를 기록했다. 앞선 3년간 1~4월 FDI 증가율 평균치 7%와 비교할 수 없는 수치다.
미국의 금리인상 행진은 외국 자본의 중국 유입은 더욱 위축시키고 유출은 확대할 전망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해 12월과 올 3월 연이어 금이를 인상했는데 그때마다 중국 시중금리도 요동쳤다. 가계와 기업의 부채가 대폭 증가한 상황에서 미국의 금리인상과 이로 인한 중국 금리변동은 부실채권 규모를 급속히 키우고 금융시스템 전반에 부담을 줄 수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선 Fed가 올해 두차례 정도 추가로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한다.
●중 "국채 외국인 보유비중 2%뿐...은행도 건전"
중국 정부와 관영매체, 관영 연구기관들은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중국의 금융 안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 재정부는 24일 발표문을 통해 "무디스가 중국 정부의 구조개혁 성과는 평가하지 않고 리스크만 과대 평가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정부부채 비율이 GDP 대비 36%에 불과해 여전히 전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기업과 가계를 합친 총부채비율의 급증과 관련 신화통신은 "GDP 대비 300%가 넘는 유럽 국가들과 비교하면 중국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일부 연구소들은 중국 은행권의 자기자본비율이 13%를 넘고, 30개 대형은행들의 수익증가율이 5년만에 최고 수준으로 향상된 점을 들어 부채문제가 시스템 리스크로 확대될 가능성은 제한
[베이징 = 박만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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