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친 유럽연합(EU) 성향의 데미언 그린 전 고용연금부 장관을 국무실장으로 임명하며 하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기조를 스스로 누그러뜨리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브렉시트 협상을 앞두고 EU와 영국내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총선 참패 후 곧바로 개각 작업에 들어간 메이 총리는 11일(현지시간) 소폭 조정된 개각안을 발표했다.
부총리격인 국무실장에 임명된 그린 전 장관은 지난해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EU 잔류를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이며, 메이 총리의 오랜 친구이기도 하다.
메이 총리가 총선에서 과반 확보에 실패하자 당내외에서는 하드 브렉시트 기조를 버리고 소프트 브렉시트로 전환하라는 요구를 쏟아냈다.
메이 총리는 그린 전 장관을 옆에 둠으로써 소프트 브렉시트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견제세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린 전 장관의 부상이 소프트 브렉시트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메이 총리는 국내에서 뿐 아니라 EU로부터도 계속해서 소프트 브렉시트 이행에 대한 압력을 받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EU 고위 관료는 최근 메이 총리에 '선(先) 탈퇴·후(後) 협상' 원칙을 지키지 않거나 EU 시민들의 권리를 보장해 주지 않으면 브렉시트 협상을 1년 뒤로 미루겠다는 협박 비슷한 압박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하드 브렉시트를 천명했던 메이 총리는 그동안 EU와의 이혼 합의금과 EU 시민권 보장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보여왔다. 협상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나서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EU는 메이 총리의 실패로 하드 브렉시트의 운명이 끝에 달한 틈을 타 브렉시트 협상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메이 총리는 오는 13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 영국과 EU의 브렉시트 협상에 차질이 없음을 전달할 예정이다.
하지만 하드 브렉시트에 대한 일말의 여지는 아직 남아있는 상황이다. 보수당 내 하드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의원들의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소수 정부 구성을 위해서는 정책 기조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국민 투표 당시 EU 탈퇴파에 있었던 마이클 고브 전 법무장관을 새로운 환경부 장관으로 지명하고 앤드리아 래드섬 전 환경부 장관을 하원 원내대
한편 온라인 청원 사이트인 'change.org'에는 메이 총리가 북아일랜드의 민주연합당(DUP)과 소수 정부 구성을 위해 협상하는 것을 반대하는 서명운동이 진행 중인데, 개설 사흘 만인 12일 오전 약 72만 명이 서명을 한 것으로 집계됐다.
[김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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