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창창한 미래가 남아 있어요. 이건 불공평해요. 죽기 싫어요"
지난 14일 영국 런던의 24층 짜리 임대 아파트 '그렌펠 타워'를 집어삼킨 화재의 희생자 글로리아 트레비산(28)이 죽기 전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트레비산은 이탈리아 명문 건축 대학을 졸업했지만 자국에선 취업난으로 인해 월급이 300유로(약 38만원)가 넘는 일자리도 찾기 힘들어 영국으로 이주했던 젊은 여성이었다.
트레비산의 인스타그램에는 참사가 있기 불과 일주일 전 그가 "이곳의 전망은 정말 끝내준다"는 코멘트와 함께 백만장자들이 사는 노팅힐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남아있다. 트레비산은 최근 월급이 1800파운드(약 260만원)인 회사에 취직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트레비산과 함께 그렌펠 타워에서 살았던 남자친구 마르코 고타르디(27)도 트레비산과 같은 베네치아 건축대학 졸업생이었다. 이들은 지난 3월 베네치아에서 런던으로 넘어와 이제 막 새로운 미래를 그리려던 중 변을 당한 것이다. 런던에서 좋은 일자리를 구해 이탈리아에 있는 가족들에 보탬이 되고 싶었던 트레비산은 마지막 순간까지 "엄마 안녕, 지금까지 제게 해준 모든 것에 감사해요. 천국에서 엄마를 도울게요"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일자리를 찾아 고국을 떠난 청년 커플이 런던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탈리아에서는 청년 실업을 해결하지 못하는 이탈리아 사회가 비극을 불러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탈리아 출신의 청년들이 타국에서 일어난 참사의 희생자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년 전 파리에서는 베네치아 출신의 발레리아 솔레신(28)이 바탕클랑 극장 테러로 목숨을 잃었고, 작년 12월 독일 베를린 크리스마스 마켓을 덮친 트럭 테러에서는 중부 라퀼라 출신의 파브리치아 디 로렌초(31)가 사망했다.
이탈리아 일간 코레에레 델라 세라는 타국에서 목숨을 잃은 이탈리아 청년들의 이야기를 보도하며 "이들의 운명은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주지 못하는 이탈리아의 비극을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특히 타지에서 구직활동을 하는 이탈리아 청년들은 이민자나 빈곤층 거주지역 등에 체류하는 경우가 많아 테러나 사고에 무방비상태로 당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탈리아에서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실업률이 약 2배로 급증했고, 특히 청년 실업률은 유럽연합(EU)에서 그리스, 스페인 다음으로 높은 수치인 40%까지 치솟았다. OECD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이탈리아 청년 실업률은 37.75%로 집계됐으며 이는 EU 평균치인 18.70%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재정적 독립을 달성하는 평균 연령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 3월 발표된 이탈리아 비젠티니 재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4년 30세이던 청년들의 재정 독립 평균 연령이 2020년에는 38세, 2030년에는 48세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탈리아 내부 상황이 이렇다보니 트레비산 커플과 같은 고학력 청년들이 타국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이탈리아를 떠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과거 교육 수준이 떨어지는 남부 거주자들이 서유럽과 미국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 들어서는 소득과 교육 수준이 높은 롬바르디아, 베네토 주 등 북부 지방이 이민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가톨릭 단체인 이민재단의 '세계의 이탈리아인'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이탈리아를 떠난 이민자 10만7000여 명 가운데 18~34세의 청년층이 약 37%를 차지해 장년층이나 고령층를 압도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민재단은 "가장 많이 이탈리아를 떠나고 있는 연령층은 '밀레니얼 세대'로 평균 교육 수준이 높지만, 유례없는 청년 실업으로 고충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해 12월 마테오 렌치 전 총리가 개헌을 목표로 실시한 국민투표는 이탈리아 청년들의 분노를 가장 잘 보여준 사례다. 이탈리아 청년층은 렌치 전 총리의 개혁 정책에 큰 기대를 걸었으나 청년실업과 경제 성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그에 대한 반감의 표시로 반대표를 던졌고 렌치 전 총리는 총리직에서 사임했다.
영국 런던 그렌펠타워 대형 화재로 목숨을 잃은 피해자는 급격하게 늘고 있다. 정부를 향한 비난이 갈수록 확산되면서 테리사 메이 총리는 총리직까지 위협받고 있다.
런던경찰청은 17일(현지시간) 이번 화재로 인한 사망자 수가 최소 58명에 이를 것이라고 수정 발표했다. 경찰은 현재까지 시신이 확인된 30명의 사망자 이외에 실종 상태인 28명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세계 2차대전 이후 런던에서 일어난 최악의 화재로 기록될 것"이라고 전했다.
경찰이 안전상 우려로 중단된 유해 수색작업을 재개한 가운데 현재 행방불명 상태인 사람들도 화재 당시 건물 안에 남아있었을 가능성이 높아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BBC는 화재 당시 그렌펠타워 거주자가 400~600명으로 추정되며 이들 중 70명이 사망했을 것이라는 자체 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에 대한 비판 여론도 들끓고 있다. 화재 현장을 찾은 메이 총리가 소방대원들만 만나고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에 무심한 태도를 보이자 시민들은 런던 곳곳에서 분노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메이 총리는 피해들이 임시 거처로 활용하고 있는 교회를 방문했지만 시위자들의 비난에 황급히 차에 오르는 장면이 연출됐다.
메이 총리는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역부족인 모습이다. 그는 17일(현지시간) 피해자 대표와 유족, 지역 주민들 15명을 총리실로 불러 2시간 30분 동안 대면했다. 이 자리에서 메이 총리는 "끔찍한 재앙이 발생한 이후 지원과 기본적인 정보 제공이 불충분했다"고 사과하면서 "긴급 기금으로 5
[임영신 기자 / 박대의 기자 / 김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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