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휴가에서 복귀하는 날, 공교롭게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휴가를 떠날 예정이어서 예고됐던 한·미 정상간 전화통화는 사실상 물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시간 4일 오후( 한국시간 5일 새벽) 백악관을 떠나 장장 17일간의 여름휴가에 돌입한다. 문 대통령은 4박 5일 간의 여름 휴가를 마치고 5일 청와대로 돌아올 예정이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 휴가를 이유로 전화통화를 미뤘던 터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는 이달 말에나 가능하다는 산술적 계산이 나온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전화통화를 하고 문 대통령과는 통화하지 않아 ‘코리아 패싱’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문 대통령 휴가 복귀 이후에 통화할 예정이라고 했었다.
이 때문에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3일 저녁 부랴부랴 허버트 맥마스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장과의 화상회의를 한 것이 이같은 상황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청와대 측은 트럼프 대통령의 장기 휴가로 한미 정상 간 전화통화가 어렵게 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문제될 게 전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미국 대통령이 휴가지에 연락시스템을 갖춰놓는 건 당연한 것 아니냐"면서 "휴가지에 있더라도 얼마든지 정상 간 통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예정대로 문 대통령이 휴가에서 복귀한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를 하게 될 것"이라며 "통화 의제 등을 놓고 양국 외교라인 간 조율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휴가 중에 전화가 가능한데 문 대통령은 왜 휴가 중에 전화를 하지 않았느냐는 의문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하다.
이와 관련해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우리 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휴가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면서 "지금 '코리아 패싱'이 논란되고 있는데, 문 대통령이 휴가 후에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할 계획이라면 왜 휴가 중에는 통화가 안되는건지 궁금하다. 그것이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청와대 측은 야권의 이같은 비판에 대해 "북한의 도발 수일 전부터 동향을 면밀히 파악하고 미국·일본 등 관련국과 대응협의 체계를 갖춰놓은 상태였다"면서 "한·미·일 긴밀한 대화와 공조가 계속돼 온 터라 한미 정상 간 전화통화 자체가 시급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휴가지는 자신의 골프장이 있는 뉴저지 베드민스터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이다. 이번 휴가는 백악관 웨스트윙(업무동) 보수작업에 맞춰서 결정됐다. 백악관의 낡은 냉난방시스템을 교체하고 내·외벽 도색과 카펫 및 커튼 교체, 기자실 천정 누수공사 등이 내주부터 오는 21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러시아 스캔들 특검수사, 오바마케어 폐기 실패, 백악관 권력암투 등으로 복잡해진 정국을 정리하고 시간을 벌기 위한 휴가라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평소 다른 사람들의 휴가를 비판해 왔던 터라 논란이 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트위터에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겨울 휴가를 비난했다. 그는 "휴가를 가지마라. 뭐가 중요한가. 만약 당신의 일을 즐기지 않는다면 당신은 잘못된 직업을 구했다"고 비판했다. 자신이 2004년 펴낸 책 ‘억만장자처럼 생각하라’에도 이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2004년 언론인 래리 킹과 인터뷰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아는 성공한 사람 대부분은 사실 휴가를 가지 않는다. 그들은 일이 휴가다. 나는 거의 일을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오바마케어 폐지 입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공화당 의원들에게 휴가 금지령을 내린 바 있어 이번 휴가가 국민들의 눈에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취임 이후 지금까지 맞이한 28번의 주말 중 13번을 백악관을 떠나 자신의 휴양지가 있는 플로리다 마라라고리조트와 뉴저지 베드민스터 골프클럽에서 보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각자 나름의 선호하는 휴양지가 있었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 서울 =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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