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적 접근이 거론되며 일촉즉발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던 북미관계에 변화의 시그널이 감지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열린 지지자 집회 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우리를 존중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면서 “아마도, 아닐 수도 있지만, 긍정적인 무언가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북한에 대해 ‘화염과 분노’라는 초강경 발언과 군사적 옵션 사용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긴장감을 높였던 기존의 태도와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 발언에 앞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도 이날 기자회견을 자청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만장일치로 대북제재안을 채택했음에도 북한은 이례적으로 미사일 발사나 도발을 하지 않고 있다”며 “평양 정권이 과거와는 다른 수준의 자제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에 대해 만족한다”고 언급했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이어 “북한의 이같은 태도를 존중하고 싶다. 이것이 우리가 기대했던 신호, 즉 도발을 자제하고 대화로 가는 길의 출발점이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틸러슨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아프가니스탄 전략을 설명한 후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기 직전 “북한에 대해 할 말이 있다”며 시작된 것으로 기존의 ‘대화론’에 비해 상당히 진지한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틸러슨 장관이 동시에 만들어 낸 긍정적 기류는 미국 재무부가 제4차 대북 독자제재안을 발표한 날에 나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같은 강온 양면전략은 트럼프 정부가 일관되게 보여 온 ‘최고의 압박과 관여’ 정책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지난 4월26일 트럼프 정부가 연방의회 상원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설명한 대북정책 리뷰는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강화하고, 동맹인 한국, 일본과 함께 외교적 조치를 확대하며, 중국을 지렛대로 삼아 북한의 핵 포기를 최대한 압박하는 동시에 북한과 대화 가능성도 열어놓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을 거론하는 국방부와 대화 가능성을 모색하는 국무부 사이에 일종의 ‘엇박자’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미국 정부는 한사코 긴밀한 공조가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 정부 관계자는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뉴욕타임스(NYT)에 공동기고한 내용을 보라”면서 “최고의 압박과 관여라는 대북정책에 있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철저히 협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일부 언론은 그러나 트럼프 정부 내에서 북한 정권을 다루는 데 있어 외교적 접근과 군사적 위협 중 어떤 경로를 택하는 것이 효과적일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진행 중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미국 재무부 외국자산통제국(OFAC)은 이날 오전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도움을 준 것으로 파악된 기관과 개인에 대한 올해 4번째 독자제재안을 발표했다. 이번 제재리스트에는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 싱가포르 나미비아의 기관과 개인이 포함됐다. 미국 법무부도 이와 별도로 중국과 싱가포르 기업 3곳을 대상으로 북한의 돈세탁에 관여한 혐의로 1100만 달러 몰수 소송을 제기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이들을 미국 금융시스템에서 배제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압력을 강화할 것”이라며 “대북제재를 거부하고 북한을 돕는다면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한국 정부의 동의없이는 한반도에서 미군의 군사적 행동이 불가능하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반박하는 주장이 미국에서 제기됐다.
버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이날 미국의 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주한미군의 경우 한국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지만 한국에 주둔하지 않는 미군 자산으로 북한을 타격하는 것은 한국 정부의 동의를 필요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기술이 한반도 뿐만 아니라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군사작전은 주한미군의 역할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데이비드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