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자국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살해된 사실을 현지시간으로 20일 인정했으나 여전히 그 발표에 의문을 남기고 있습니다.
지난 2일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 안에서 카슈끄지가 용의자들과 대화를 하다가 우발적인 주먹다짐으로 이어졌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됐다는 사우디의 석연찮은 설명은 의문이 꼬리를 물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정황 진술만 있을 뿐 발표 내용을 입증할 구체적 증거가 하나도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은 사우디 발표의 신뢰성을 낮추고 있는 부분입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발표에서 사우디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카슈끄지 사건을 인지하고 있었는지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을 가장 큰 의문으로 꼽았습니다.
사우디 정보기관, 언론 통제는 물론이고 정치 사회체제 재편을 이끌고 있는 그가 이번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매우 약하다는 것입니다.
미국, 터키 당국도 이처럼 정교한 작전이 빈 살만 왕세자가 모른 채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 전직 미국 외교관은 "이번 일은 MBS(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영문 약칭) 승인 없이는 결코 일어날 수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이번 작전에는 사우디 왕실 기업 소속의 항공기 2대와 빈 살만 왕세자와 가까운 15명의 용의자가 동원됐습니다.
이번 사건의 책임을 지고 20일 해임된 왕세자 보좌관 사우디 알-카타니는 과거 소셜미디어에 "내가 지시 없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겠느냐. 나는 왕과 왕세자의 고용인으로서 신뢰할 만한 명령 수행자"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현재 가장 의문이 되는 사항은 카슈끄지의 시신이 어디에 있느냐는 점입니다. 사우디 당국은 총영사관 안에서 카슈끄지가 살해된 사실은 인정했지만 그의 시신이 어떻게 됐는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사건 초반 시신 일부가 터키 국외로 반출됐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터키 당국은 최근 이스탄불 교외지역에서 수색작업을 벌였습니다.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익명의 한 사우디 관리를 인용해 사우디 파견팀이 카슈끄지의 시신을 '현지 협력자'에게 처리하라고 넘겼다고 전했습니다.
일각에서는 '협력자'라는 새로운 인물을 출연시킨 데에는 '토막설'이 나오고 있는 카슈끄지 시신 상태에 대한 사우디측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추측도 내놓고 있습니다.
아울러 신문은 이번 사건의 용의자들이 귀국에 관심을 보이던 카슈끄지를 만나기 위해 터키로 건너갔다는 사우디측 설명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당시 사우디 정부의 결혼승인 서류를 얻으려 총영사관에 간 것이라고 카슈끄지의 터키인 약혼녀 하티제 젱기즈가 밝힌 것과 상치됩니다.
또, 그의 자발적 귀국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서 '왜 터키에 많은 사람을 보냈느냐'는 점도 의문입니다. 사우디 당국은 카슈끄지 사망에 관여한 18명을 구금한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앞서 터키 정부는 카슈끄지 실종 직전 총영사관에 들어갔던 사우디 국적자 15명의 신원을 공개했습니다. 이들 중에는 사우디 정보기관원들이 대거 포함돼 있었습니다. 터키 당국은 이중 최소 12명이 사우디 정보기관과 연계돼 있고, 이들 중 살라 무하메드 알-투바이기는 법의학 전문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의 브루스 리델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범행 증거를 지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법의학 전문가가 필요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물리적 충돌을 의미하는 '몸싸움, 또는 주먹다짐' 설명 역시 카슈끄지 홀로 15명이나 되는 인원을 실제 대적했겠느냐는 의문이 더해집니다. 터키 당국이 입수한 살해 당시 상황이 녹음된 오디오에는 그가 일방적으로 고문을 당했고, 살해가 우발적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내용이 나옵니다.
NYT와 WP는 또 사우디의 발표가 이처럼 오래 걸린 데 대
이에 대해 터키 당국이 카슈끄지 피살 의혹을 제기하고 사우디 최고위층이 조사를 지시하고 나서야 터키에 파견됐던 팀이 곤경에 빠질 것을 우려해 뒤늦게 사건 은폐에 나섰기 때문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