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으로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된 오바마.
피부색의 편견을 깨는 것만큼이나 대선 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오바마의 등장부터 대통령이 되기까지.
정규해 기자가 되짚어봤습니다.
【 기자 】
지난 2004년,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존 케리 후보의 전당대회.
이날 기조연설자는 정치 신인 오바마였습니다.
오바마는 이날 인상깊은 기조연설로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었습니다.
4년 뒤, 오바마는 대통령의 꿈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하지만, 시작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가는 문앞에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 인터뷰 : 힐러리 클린턴(지난 7월)
- "여러분 덕분에 저는 백악관으로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꿈꾸던 힐러리의 아성이 거셌지만, 우여곡절 끝에 결국 오바마는 대통령을 향한 첫 관문을 통과했습니다.
일찌감치 매케인을 후보로 확정한 공화당과 달리, 혈전을 벌였던 민주당은 전화위복으로 경선이 흥행에 대성공을 거두면서 먼저 승기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공화당의 기세도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오바마는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페일린에 발목을 잡혔습니다.
페일린을 둘러싼 각종 스캔들이 오히려 상승작용을 일으켜 일명 '페일린 효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 인터뷰 : 페일린 / 미 공화당 부통령 후보(지난 9월)
- "나는 언론의 인기를 얻으려고 워싱턴으로 가는 게 아니라 이 나라 국민에게 봉사하려고 워싱턴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오바마는 한때 매케인에 지지도 우위를 내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페일린 효과는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상징되는 금융위기로 빛이 바랬습니다.
투자은행이 무너지고 주가가 폭락하는 금융 재앙이 벌어지면서, 여론의 비판은 부시 행정부로 향했고, 이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오바마의 '변화'로 이끄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 인터뷰 : 버락 오바마 / 미 대통령 당선자(지난 9월)
- "국민의 집과 일자리를 지켜주는 계획이 필요합니다. 납세자들의 돈을 월가 CEO에게 갖다바치는 대신, 힘든 국민을 구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후 오바마는 공화당의 텃밭 지역 표심까지 흔들며 줄곧 승기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막판까지 브래들리 효과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결국, 오바마는 인종을 뛰어넘어 미국의 미래를 책임질 선장으로 미국호의 뱃머리에 섰습니다.
mbn뉴스 정규해입니다.
< Copyright ⓒ mb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