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코 전 총통 손자인 프란시스코 프랑코 마르티네즈-보르디우씨(64)가 23일(현지시간) 수도 마드리드 시내 외교단지에서 기자들과 인터뷰 하고 있다. [출처=로이터] |
그는 프랑코 전 총통 유해 이장을 하루 앞둔 23일(현지시간) 수도 마드리드 시내 외교단지에서 기자들과 인터뷰 하면서 "이건 사회당 정부와 사법부가 기회주의자로 행동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또 "정부가 11월 10일 총선을 노리고 표를 얻으려고 정치 홍보전을 벌인 것이다. 이런 데 끌리는 자들은 노동조합들이나 분리주의자들 뿐"이라면서 "할아버지 유해 이장은 나라를 분열시키는 카탈루냐 분리독립주의 운동과 다를 바 없는 처사"라면서 현 산체스 정부를 비난했다.
'프랑코 전 총통 유해 이장' 사건은 다른 유럽 국가와 달리 1975년에서야 비로소 군사 독재가 끝나고 민주화가 이뤄진 스페인의 과거사가 배경이다. 1975년은 프랑코 전 총통이 사망한 해다.
↑ 프랑코 전 총통의 유해. [출처=스페인 엘코레오데마드리드] |
↑ 스페인 내전 희생자들이 묻힌 전몰자 계곡 . [출처=위키피디아] |
'프랑코 전 총통 유해 이장' 문제는 지난해 부터 불거졌다. 지난해 페드로 산체스 총리(사회노동당)가 독재자 프랑코 전 총통 묘역을 이장하기로 하고 이를 연방 의회가 승인하면서 찬반 여론이 분분했다. 당시 산체스 총리는 "국민을 갈라놓은 상징물을 용인할 수 없다"며 "프랑코가 묻힌 곳을 파시즘 항전 기념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총리는 주말마다 전몰자의 계곡에 묻힌 프랑코와 스페인 파시스트(전체주의 독재)운동을 이끈 프리모 데 리베라 등의 묘역에서 독재 정권의 향수에 젖은 열성 지지자들이 미사를 여는 탓에 독재의 상처가 아물지 못한다면서 프랑코 유해 이장을 추진했다. 그간 스페인에서는 이른바 좌파 정부가 집권했을 때에도 쉽사리 독재 정권 과거사 청산을 위한 유해 이장 문제를 들먹이지 못했지만, 산체스 총리는 지난해 6월 불신임투표를 통해 우파 정부를 붕괴시키고 임시 총리로 집권해 나라 결속 다지기에 나섰었다.
다만 산체스 총리는 오는 11월 10일 총선을 다시 치러야 하는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 4월 말 총선에서 산체스 총리가 이끄는 중도좌파 노선의 사회노동당이 최대 다수석을 차지해 승리했지만, 의회 내 과반의석은 확보하지 못하는 바람에 총리가 좌파 노선 '포데모스 당'과 연정 구성에 나섰지만 실패했기 때문이다. 프랑코 전 총통 손자가 "정부가 정치게임을 벌인다"고 비난 여론전에 나선 이유는 이같은 정치적 상황 탓이다.
↑ 프랑코 전 총통 손자인 프란시스코 프랑코 마르티네즈-보르디우씨(64)가 "24일(현지시간) 이장식 때는 프랑코 정권의 상징인 검은 독수리가 들어간 스페인 깃발을 쓸 것"이라면서 깃발을 보이고 있다. [출처=로이터] |
프랑코 전 총통은 무솔리니가 통치하던 이탈리아와 히틀러 치하 나치 독일과 손잡은 인물이다. 그는 1936년부터 1975년까지 스페인을 철권 통치했다. 스페인 군의 모로코 사령관을 지낸 그는 1936년 총선에서 좌파 정권이 들어서자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후 스페인에서는 3년 간 '좌 vs 우' 이념 대결 내전이 벌어졌다. 3년의 싸움 동안 수십만명이 죽었고, 1939년 프랑코가 이끄는 반군 승리로 끝났다. 프랑코는 이탈리아와 독일의 지원을 받아 내전에 승리했다. 이후 자신을 국가 수반을 뜻하는 '엘카우디요'라고 자임했다.
↑ 지난 달 스페인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히틀러와 프랑코의 사진이 담긴 `범죄자들` 푯말을 들고 시민들이 마드리드 시내 대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로이터] |
스페인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극우 정당이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과거사 청산이 이뤄지지도 않았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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