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연합뉴스] |
유럽인의 DNA 한켠에는 황인종에 대한 공포가 각인돼 있다고 한다. 훈족과 몽골의 침입, 그리고 비단길을 타고 온 흑사병의 기억이 집단의식속에 잠재돼 있다는 주장이다. 흥미로운 '썰'로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럽인 DNA속 공포와 혐오를 추출·복원시켰다. 유럽 곳곳에서 황인종들이 괄시받고 있다. 중국인 유학생들이 셋집에서 쫓겨나고 비슷하게 생긴 한국인, 일본인들은 "아임 낫 차이니스"를 외치고 다닌다. 유대인 장교 드레퓌스가 반유대정서 광풍에 스파이로 몰렸던 것이 약 120년 전이다. 시대의 지성 에밀 졸라가 부당함을 고발했고 그 덕에 '문명국 프랑스'는 간신히 체면을 지켰다. 2차대전이후 유럽에서 반유대주의는 인류범죄가 됐다. 오늘날 유럽에서 혐오의 시선은 유대인 대신 아랍 이민자들을 향한다. 그리고 지금은 황인종이다. 지금은 에밀 졸라가 보이지 않는다.
효율적으로 기능하는 듯했던 중국 공산당 독재 체제는 알고보니 엉망진창이었다. 감시시스템은 인민을 통제할수는 있었지만 바이러스에는 뻥뻥 뚫렸다. 명색이 세계2대 강국이라는 나라에서 의료진들조차 치료를 못받아 죽어나간다. 공산당은 바이러스와 전쟁보다 인민의 입을 틀어막는데 더 혈안이 되어있다. 많은 세계인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중국의 체제모순에 더 혐오를 느낀다.
요코하마항에 정박한 크루즈선에서 20일까지 634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고 이중 2명이 사망했다. 이런 일본은 낯이 설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비할수 없이 큰 재해에 임해서도 위대한 위기관리능력으로 세계를 탄복시켜온 그 일본은 어디 갔나. 일본은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번진 크루즈선은 그러나 매뉴얼에 없었다. 여기에 도쿄올림픽 흥행 욕심이 판단력을 흐리는데 일조했다. 쓰나미와 대지진에는 질서정연하게 대응하는 일본이지만 오염된 크루즈선 처리에는 우왕좌왕했다. 이것이 일본 이면의 함정 일지도 모른다. 융통성과 창의성이 결여된 일본.
북한은 이번 사태에 임해 가장 일찍 중국인 입국을 차단시킨 나라중 하나다. 명색이 혈맹이고 중국과 뒷거래가 아니면 굶어야 하는 형편인데도 그렇게 했다. 북한 보건역량상 전염병 창궐을 통제할수 없고 민심 동요가 통치기반 와해로 이어질 것을 걱정해 그렇게 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그렇게 주도면밀한 나라였던가. 더 직접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혹자는 김정은의 건강염려증이 결단의 배경이 됐을 것으로 설명한다. 김정은은 종합병동같은 질환보유자지만 특히 호흡기가 좋지 않고 최근 큰 수술을 받은 정황도 있다. 전염병 감염이 치명적 결과로 이어질수 있는 '취약층'인 셈이다. 나는 이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북한은 결국 김정은 한명이 살면 되는 나라다. 코로나19 대응에서 그 체제특성이 드러난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시진핑에게 전화를 걸어 "중국의 어려움이 한국의 어려움"이라고 위로했다. 그전에는 '한중 공동운명체' 얘기도 했다. 이웃지간에 이런 위로쯤은 할수도 있을 것 같다. 문제는 그냥 덕담이 아니라는 것이다. 코로나19 확진자수가 중국에 이어 2,3위를 달리고 있는 한국과 일본은 중국인 입국을 전면 통제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본은 도쿄올림픽때문에 중국 눈치를 평소보다 더 봤을 것이고 한국이 중국 눈치를 본 지는 꽤나 오래됐다. 이 정부 들어선 미국보다 중국을 훨씬 더 의식한다. "중국의 어려움이 한국의 어려움"같은 말은 힘이 더 세거나 비슷한 관계에서 할 때 덕담이 된다. 트럼프가 시진핑에게 하면 훈훈하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수천년동안 속국 취급당한 한국의 지도자는 조심해야 할 말이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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