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시지탄이지만 지난 9월 전국민 통신지원비 2만원 지급 예산의 10%만 백신 선구매에 썼어도···"
국내 감염병 권위자인 A교수는 10일 매일경제와 전화통화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외신에서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의 미국 내 임상 3상 완료 및 긴급 사용승인 신청이 늦어질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이 백신을 대거 사전 계약한 미국에서조차 본격적인 공급 시점이 내년 중반이 될 것이라는 아스트라제네카 측의 충격적 발언이 확인됐다.
무려 9000억원의 예산을 전국민 통신비 지원 명목으로 썼는데 이 중 일부만 떼어내 본격적으로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모더나 등과 계약 협상을 시작했더라면 전국민이 '과연 내년 초에 제대로 백신을 접종받을 수 있을까'라는 지금의 불안이 덜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대체 한국의 코로나19 백신 확보전략은 어디에서 스텝이 꼬인 것일까.
■ 아스트라제네카의 고해성사…내년 중반 미국 공급할수도
내년 2월부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개시할 수 있다는 한국 정부 계획에 비상이 걸린 이유는 9일(현지시간) 미국에서 터져나온 뉴스 때문이다.
임상 중 부작용 발생과 투약 규모에 따른 차별적 효과성 문제로 곤욕을 치른 아스트라제네카 측이 규제당국 심사가 늦어질 경우 미국 시장에서조차 내년 중반에야 생산·공급이 가능할 수 있다고 고해성사를 한 것이다.
이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연구개발을 총괄하는 애드리안 힐 제너 연구소장은 미국 NBC뉴스에 "미국 식품의약국(FDA)가 (우리의) 임상시험이 종료되기를 기다린다면 내년 중반이 돼야 미국에서 백신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 임상 3상 종료 전에 FDA가 신속하게 사용 승인을 내야 한다는 호소이자, 지연 시 생산·공급이 내년 중반으로 늦어진다는 고백성 발언이다.
■ 아스트라제네카 임상지연 리스크 알고도 韓정부 "내년 2월 가능" 청사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지난 7월과 9월 일부 접종자에서 부작용이 발생해 임상 시험을 중단한 바 있다. 이로 인해 화이자·모더나 백신보다 임상 3상을 먼저 시작하고도 아직까지 3상을 마치지 못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부작용 관련 데이터를 FDA에 성실하게 제공하지 않은 사실도 최근 드러났다.
회사는 FDA의 긴급 사용승인 충족 요건(3만명 이상 임상 데이터 제출)에 못 미치는 2만명분을 확보한 상태다. 또한 최종 백신 접종 후 2개월이 지난 상태에서 접종자의 절반인 1만5000명에 대한 데이터를 함께 제출해야 한다. 이로 인해 국내 제약업계에서는 "아스트라제네카가 일러야 내년 1월에야 3상 결과를 제출하고 FDA 긴급 사용승인 허가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걱정이 나오고 있다.
미국 FDA 사용승인이 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보건당국이 독자적 평가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승인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더구나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늦게 아스트라제네카와 2000만 회분 선구매 계약을 체결해 조달 시점에서 더 불리하다.
■ 韓정부, "美승인 여부 지금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임상 지연과 이에 따른 연쇄적 승인 지연 리스크에 대해 10일 정부 입장은 "예단하지 말고 계속 지켜보자"는 것이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10일 코로나19 상황 백브리핑에서 "국내에서 생산을 하고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이미 아스트라제네카와 일정한 협약을 해뒀다"며 우리나라에 생산되는 물량이 처음에 계획된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사용될 것은 틀림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스트라제네카 생산 백신의 FDA 승인 지연 가능성에 대해서는 정부도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는 분위기다.
윤 반장은 "FDA의 승인이 공식적으로 연기되는 것인지, 우려가 있는 수준인지 등 사실관계 파악이 아직 안 되고 있다"면서 "대응 방안을 이야기하기에는 이른 시기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국내 백신 도입 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문의에도 "심각한 부작용이 없다면 부작용과 함께 접종함으로써 나타나는 편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될 것이며, (FDA의) 승인이 날지 말지 지금 판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국내 사용 여부는 우리 식약처가 결정할 것이며, 국내에서 도입이나 생산이 지체될 가능성은 낮다고 전했다.
■ 백신 '국가 격차'가 야기할 경제 피해 클 수도
더구나 내년 상반기까지 백신 확보가 원활하지 않으면 한국의 글로벌 기업 활동에도 차질이 발생할 것이라는 게 A교수의 염려다.
백신 접종을 먼저 시작한 국가들이 자국에 유입되는 외국인을 상대로 백신 접종 확인증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백신 여권'이다.
자국산 백신을 확보한 중국이 내년 국경 간 이동 조건으로 백신 접종 확인증을 요구할 경우 현지 가전·반도체·자동차·화학 공장에 직원을 파견해야 하는 한국 기업들은 혼란을 겪게 된다.
이미 국제사회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백신 여권이 존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아프리카 황열 발생국에 입국하려면 반드시 한국에서 황열병 예방접종 후 이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의 전세계적인 감염력과 각국이 경험한 경제적 쇼크를 고려할 때 한국의 코로나19 백신 확보 문제는 보건을 넘어 경제안보 이슈로 확
이미 한국 유력 기업이 최근 중국에 직원들을 보내려다 해당 전세기편이 취소되는 사태를 겪었다. 이후 중국은 지난달 한국에서 중국 입국 시 종전 유전자증폭(PCR) 진단검사와 더불어 혈청 검사 증명서를 함께 제출하도록 기준을 바꿨다.
[이재철 기자 / 정슬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