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인도·태평양 지역 균형전략은 헤게모니 싸움이 아니다. 균형과 21세기형 개방으로 가야 한다."
일주일 뒤 미국의 새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조 바이든이 준비하는 아시아 전략의 얼개가 나왔다.
그에게 새로운 아태 지역질서 구축을 조언할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12일(현지시간)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미국은 어떻게 아시아 지역질서를 강화할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균형·개방'이라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동시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으로 합류할 예정이다.
캠벨 전 차관보는 중국의 세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한 균형과 개방의 액션플랜으로 한국과 호주, 인도를 기존 주요 7개국(미국 ·일본·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에 합류시킨 이른바 '민주 10개국(D-10) 연합'을 만들어 가동할 것을 주창했다. 그리고 이 작업이 미국 국정사에서 대단히 어려운 도전 과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 놀라운 점은 이 장문의 기고문에 '북한'이나 '김정은'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거론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오로지 중국의 세력 확대를 견제하는 효율적 수단 확보가 바이든 정부 초기 대아시아 정책의 핵심 현안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 "2개의 아시아 존재…트럼프가 모두 망가뜨렸다"
그는 아시아가 외교·안보 중심의 아시아, 경제 중심의 아시아라는 '2개의 아시아' 시스템으로 작동한다고 규정했다. 이 두 개의 시스템에서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하는 동안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잘못된 대아시아 전략으로 스스로의 영향력을 약화시켰다고 진단했다. 중국의 세력화를 견제할 일본과 한국을 상대로 트럼프 행정부가 현지 주둔 미군의 감축을 압박하는 것은 물론, 고립적 통상정책으로 혼란을 야기했다는 판단이다.
그는 "지역 질서는 균형과 합법성을 모두 유지할 때 가장 잘 작동하는데 트럼프는 이 모든 작동 시스템을 망가뜨렸다. 그 결과 베이징의 세력확대 모험주의를 더욱 대담하게 만들어버렸다. 그 결과물이 홍콩 사태와 신장 위구르 자치구 탄압"이라고 비판했다.
캠벨 전 차관보는 "이 잘못된 접근이 (바이든 행정부에서) 계속된다면 아태 국가들은 현재의 지역 질서가 불법적이라고 판단하게 되고 결국 중국의 더 깊은 그림자에서 표류하게 된다"고 진단했다.
■ "아시아 군사 플랫폼, 보다 저렴하고 비대칭적 형태로 바뀌어야"
외교·안보 중심의 아시아 시스템을 상대로 미국은 어떤 변화를 추구해야 할까. 캠벨 전 차관보는 거대 항공모함으로 상징되는 비싸고 느리며 비효율적인 군사 프랫폼을 '저렴하고 비대칭적'인 플랫폼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항모 배치 대신 탄도미사일을 포함한 고속 공격무기에 투자해 비대칭적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중국 해군이 미국 해군과 같은 수준의 대양(Blue-water)으로 진출하는 대양해군으로 역량을 키워가고 있음을 경고하기도 했다. 현저히 개선된 군사적 역량이 인도와 일본, 대만, 베트남 등을 상대로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이슈에 초점을 맞춘 대연정 연합을 구성하기보다 한국과 인도, 호주를 포함시키는 'D-10 연합'으로 맞춤형 플랫폼을 구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D-10 연합을 기반으로) 창의적 제도설계를 통해 미국은 외교·안보 기술을 향상시키고 통상·기술 등에서 초국가적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해당 동맹국들에 권한을 키워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연합 국가들을 상대로 비대칭 군사 역량을 함께 키우는 것도 세력 견제 측면에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D-10 연합, 중국을 협력의 길로 안내하는 설득자 역할도 중요"
캠벨 전 차관보의 이번 기고문은 그가 미국 내 최고의 아시아 전문가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일례로 그는 한국과 같은 미국의 파트너 국가들이 미·중 사이에서 선택적 강요를 받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거론했다.
이런 내재적 한계를 고려하면 D-10 연합의 역할이 단순한 견제와 압박이 아닌, 대중국 설득의 실용적 플랫폼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이 추구해야 할 대중국 세력 견제의 지향점인 '균형'과 '21세기형 개방'이라는 취지다.
그는 "(어려운 과제이지만) 중국을 상대로 미국과 파트너국들이 경쟁적이지만 평화로운 지역 이익을 설득하는 게 더 적합한 해결책"이라며 "기후변화, 코로나19 대응 등에서 중국을 제도적 협력의 틀로 끌어들여 공동이익의 창출을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 집권 초기 아태지역 연합 구축작업과 동시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상대로 특사 파견 등 열린 자세로 협력적 소통을 시험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한편 해당 기고문에서 캠벨 전 차관보는 북한의 비핵화 전략 등 대북한 이슈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재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