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헤지펀드들의 게임스톱 주식 공매도 결정은 합리적으로 보였다. 비디오게임 소매업체인 게임스톱은 원래 대중의 관심 밖에 있던 종목. 유명 투자자의 지분 인수 이후 가격이 급등했다. 향후 가격 하락을 예상한 헤지펀드들은 게임스톱 주식을 공매도했다. 6개월 전만 해도 4달러 하던 주가가 별다른 실적 개선 없이 10배 이상 올랐으니 가격 하락에 배팅한 건 합리적 의사결정 같았다.
그러나 개인 투자자들이 분노했다. '월스트리트베츠'라는 온라인 주식 토론방이 매개체가 됐다. 그 토론방에 모인 300만 명의 개인 투자자들은 게임스톱 주식을 대거 매수했다. 게임스톱의 주가는 급등했다. 공매도를 친 헤지펀드들은 200억 달러가 넘는 손실을 입었다고 한다.
이 같은 개미들의 투자를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나. 기대 이익과 손실을 따져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투자 결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혹시 과열은 아닐까. 새로운 투자자가 등장해 온라인 유통점으로 변신을 추진하겠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고 해도 주가를 수십 배 이상 끌어올린 건 '비이성적(?) 과열' 같다.
그렇다면 무엇이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과열을 촉발한 것일까? 일부 전문가들은 월가에 대한 개미들의 분노에서 답을 찾는다. 월가는 큰돈을 벌면서 위험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비판을 계속 받아왔다. 위험한 파생상품 투자 등으로 2008년 금융위기를 부른 주범으로서 수많은 미국인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겼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그 와중에도 두둑한 보너스를 챙기고 라스베이거스에서 휴가를 보내는 행태를 보여 대중과 정치권의 분노를 샀다. 월가에 대한 일반 미국인들의 불만과 불신은 차곡차곡 쌓여왔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불공정에 분노하는 본성이 있다. 자신은 손실을 입으면서까지 그 불공정을 응징하려고 한다. 이를 입증하는 심리 실험은 매우 많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실험 참가자 김 씨는 100달러의 돈을 받아 이 씨와 나눠야 한다. 어떻게 나눌지는 김 씨가 정한다. 김 씨가 99 달러를 갖고 1달러만 이 씨에게 줘도 된다. 다만 이 씨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김 씨가 준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면 그 100달러는 모두 연구진에게로 회수된다. 김 씨와 이 씨는 둘 다 한 푼도 못 갖게 된다.
이 씨가 만약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합리적 개인이라면 김 씨가 아무리 작은 돈을 나눠주더라도 받는 게 맞는다. 김 씨가 기껏 10달러만 준다고 해도 받는 게 이득이다. 거부권을 행사하면 무일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우리 인간은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입증됐다. 비록 자신은 한 푼도 못 갖더라도 상대 역시 한 푼도 못 갖게 만든다. 이는 불공정하게 더 큰 몫을 챙기는 자에 대한 응징이다. 이처럼 우리는 비록 손실을 보는 한이 있더라도 상대의 불공정을 응징하고자 하는 강한 본성이 있다.
미국의 개인 투자자들도 그 같은 본성이 발동한 게 아닐까? 공매도를 친 월가 헤지펀드들이 대한 분노는 물론이고 오랫동안 불공정한 게임을 해온 월가에 쌓인 분노가 폭발한 결과가 아닐까. 그래서 향후 게임스톱 주가가 하락해 손실을 보는 한이 있더라도 게임스톱 주식을 사들여 월가의 불공정을 응징하려고 한 건 아닐까?
물론 게임스톱의 주가 상승은 정부의 과도한 돈풀기로 인한 주가 거품의 징조일 수도 있다. 개인 투자자들의 탐욕이 빚은 비이성적 해프닝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도 있다. 게임스톱 주가는 27일(현지 시간) 134.8% 상승했으나 28일(현지 시간)에는 44.3% 하락했다. 급등락
그러나 어쨌든 개미들이 월가의 큰 손에 본때를 보여준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월가는 단지 개미들의 비이성적 과열만을 탓해서는 안될 것이다. 자신들의 탐욕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인식하고 성찰하는 계기로 삼는 게 옳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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