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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멘트 】
태국 사태를 되짚어 보면, 유혈 참극을 피할 수 있었던 순간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극렬 시위와 강경 진압의 악순환에는 브레이크가 없었습니다.
태국 사태, 임진택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 기자 】
태국 반정부 시위의 도화선은 지난 2월 대법원이 탁신 전 총리의 재산을 몰수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반발한 친탁신 단체는 지난 3월 14일부터 방콕에서 총리 퇴진과 의회 해산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습니다.
시위대가 의사당에 난입하고, 방콕 중심가 라차프라송 거리를 점거하자, 4월 7일 아피싯 태국 총리는 방콕에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사흘 뒤 정부는 첫 번째 시위대 강제 해산에 나섰지만 실패했고, 25명이 사망하는 유혈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이번 달 들어 시위는 한풀 꺾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위대는 유혈 사태의 진상 규명을 요구면서 다시 거리 점거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결국, 태국 정부는 타협안을 철회하고 지난 13일 두 번째 강제 해산에 돌입했습니다.
사흘 동안 이어진 진압 작전으로 25명이 숨졌지만, 시위대는 점거 농성을 중단하지 않았고 급기야 군은 실탄을 쏘기에 이르렀습니다.
두 달 간의 유혈 사태로 목숨을 잃은 사람만 70여 명.
대규모 유혈 참극은 태국 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비극으로 남게 됐습니다.
MBN뉴스 임진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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