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가장 장대한 길을 향해
파미르 고원 대부분 차지하는 타지키스탄
12일간의 파미르 하이웨이①
파미르 고원 대부분 차지하는 타지키스탄
12일간의 파미르 하이웨이①
하늘에 닿을 듯 고도가 높은 길, 해발 5,000m에 달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도로’, 바로 파미르 하이웨이(Pamir Highway)다. 고대 실크로드 무역로를 통해 형성된 지구상에서 가장 높고 장대한 이 도로를 향한 여정. 파미르 하이웨이 여행의 베이스캠프라 불리는 타지키스탄 두샨베에서 그 장대한 여정을 시작했다.
↑ ‘호르그’는 해발 2,200m에 위치한 타지키스탄의 주도로, 파미르 고원에 걸쳐 있는 도시와 마을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지역이다. 사진은 호로그 전망대. |
“하루아침에 갑자기 영하로 기온이 뚝 떨어져서 홈스테이 가족이 소똥을 태워 난로에 불을 지폈다니까.”
“해발 4,000m 이후부터 고산병 때문에 매일이 지옥 같았어.”
“셰어택시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어.”
파미르 하이웨이를 다녀온 여행자들이 하나같이 늘어놓는 후기는 오히려 무용담에 가까웠다. 여행이라기보다 마치 파미르에 용감하게 맞서 싸운 치열한 전쟁터를 다녀온 이야기 같았다. 극한의 기온과 환경 속에서, 매 순간 여행의 희로애락을 마주한 그 무용담의 결말은 어쨌든 견뎠고, 버텼고, 해냈다는 것. 그리고 여행을 마친 뒤 웃으며 돌이켜 볼 수 있게 됐다는 것.
“펑펑 내리는 눈을 뚫고 자전거 페달을 밟는 그 기분을 어떻게 표현한담? 아니 말로는 표현이 안 돼.”
“겨울도 아닌데 귀하디 귀한 소똥을 태운 건 홈스테이 가족 입장에선 사치였을 거야. 소똥이 사치라니… 참 신기하고 재미있는 상황이었어.”
“이제와 생각하면 고산병을 겪은 게 오히려 좋은 경험이 됐지.”
“그럼에도 셰어택시는 나타났어.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긴 했지만.”
아는 것이 힘이 되려면 이들의 결말만 믿고 가면 된다. 가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기에. 목표를 향한 발걸음이 불안을 삼킨다.
M41 도로, 여정을 위한 베이스캠프
↑ 도시 건설이 한창 진행 중인 두샨베 중심가 |
이 도로는 키르기스스탄 오시(Osh)에서 시작해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거쳐 아프가니스탄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에서 끝난다. 구간 가운데 1,000km에 달하는 상당부분이 타지키스탄에 넓게 형성되어 있다. 때문에 파미르 하이웨이 여행의 핵심은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Dushanbe)에서 키르기스스탄 국경과 인접한 카라쿨(Karakul) 호수까지다.
↑ 두샨베 국립도서관 |
↑ 두샨베 도심 풍경 |
↑ 두샨베 도심의 그린 하우스 호스텔. 파미르 하이웨이 여행은 이 호스텔에서 대부분 시작된다. |
핵심과제는 교통수단! 셰어택시의 목적지, 칼라이쿰
두샨베에서 파미르 하이웨이로 향하는 시외버스나 기차는 전무하다. 호스텔 직원으로부터 전달받은 옵션은 두 가지로 운전기사가 딸린 차량을 렌트하거나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셰어택시를 타는 것. 프라이빗 차량을 렌트한다면 여기서 다시 두 개의 옵션이 주어진다. 혼자 타거나 여럿이 타거나. 문제는 역시나 비용이었고, 또 그 기준이 애매모호하다는 것. 셰어택시를 타는 것도 말이 ‘셰어’지, 혼자 타게 된다면 결국 비용은 프라이빗 차량과 다를 바 없다.↑ 그린 하우스 호스텔 마당에 주차된 여행자들의 교통수단 |
이제 여행은 현실이다. 흥정에 맞서 싸워야 할 때가 왔다. 휴대폰 계산기가 운전사에서 여행자로 수차례 왔다 갔다, 계산기에 적힌 숫자가 오르락 내리락 여러 번 반복한 끝에 기나긴 흥정은 끝이 났다. 우리 일행끼리 미리 입을 맞춘 것도 아닌데, 제각기 포지션을 드러내며 공격과 방어, 수비에서 나름 선방한 결과를 손에 넣었다. 집단생활의 시작이 나쁘지 않다. 이대로 제각기 자신의 포지션을 잘 유지하기만 한다면.
↑ 파미르 하이웨이행 셰어택시정류장 |
단, 4륜구동 오프로드 차량을 타고 이동한다는 가정 하에 성립되는 수치. 거리상으로 보면 호로그까지 약 600km로,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이동거리보다 조금 더 가지만 도로사정이 우리나라와는 천지차이다. 위에 언급된 이동시간은 온전히 차량이 달리는 거리만 계산한 것이기 때문에 식사나 휴식을 이유로 중간마다 정차하는 시간까지 더하면 호로그까지 하루 만에 이동하는 건 엄두를 내기 쉽지 않다.
셰어와 프라이빗 그 사이에서
↑ 산길에 조성된 비포장도로 |
칼라이쿰으로 향하는 길목에 차를 멈춰 세울 만큼 볼거리가 다양하진 않다. 그중 누렉 저수지(Nurek Reservoir View)와 쿨롭(kulyab) 마을이 대표적인 쉼터인데, 운전사의 말에 의하면 누렉 저수지에서는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기 좋고, 쿨롭 마을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들른다고 한다.
↑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댐, 누렉 저수지 |
↑ (좌로부터)새 포장도로를 달리는 차량, 누렉 저수지 인근에 자리한 휴게소, 칼라이쿰으로 향하는 도로 위 풍경 |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쿨롭에서 동북쪽으로 70여 km를 지난 지점부터 판지강 너머에 아프가니스탄 국경이 한눈에 담겼다. 판지강 정 가운데 국경선이 그려진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파미르 하이웨이 여정에서 최대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두 나라의 국경선을 따라 이동한다는 것, 그리고 강 너머에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국경선을 따라 난 좁다란 비포장도로는 가면 갈수록 도로사정이 험난하기만 하다. 듣던 것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다. 운전사는 파미르 산맥으로 이어지는 도로 중에서 그나마 사정이 좋은 편이라며 위로를 건넨다.↑ 판지강을 중심으로 국경이 나뉜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
여기에 국경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불법 마약 밀수나 판매, 반군 관련 폭동 등도 단절을 가속화하는 배경이다. 판지강이 흐르는 칼라이쿰 중심가에서 강 건너 아프가니스탄 마을을 바라보고 있자니 주택과 사람들의 형체가 뚜렷이 눈에 들어왔다. 강폭이 좁아 다리가 필요 없을 만큼 수영만으로도 금세 닿을 것처럼 지척이다. 국경은 있지만 이웃은 이웃이다.
↑ 판지강이 흐르는 칼라이쿰 중심가에서 바라본 아프가니스탄 마을 |
셰어택시가 잡히지 않는다
위치상 두샨베와 호로그 사이 중간지점에 자리한 칼라이쿰은 여행자에게 있어서 호로그로 가는 길에 하는 수 없이 하룻밤을 청하는 마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더군다나 많은 수의 여행자들은 이마저도 고려 사항이 아니다. 여기서 하룻밤을 청하는 대신 호로그까지 13시간가량을 하루 만에 주파하는 여행자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그렇기에 칼라이쿰 중심가에 있는 숙박시설에는 여행자가 늘 귀한 존재로 환영을 받는다. 숙박업소 주인은 여행자를 환영해마지 않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한탕을 노리기 위한 흥정전략에 몰두하는 경우 역시 적지 않다. 외국인 여행자는 이들에게 ‘물주’와도 같기에.
↑ 파미르 산맥에 둘러싸인 칼라이쿰 마을 전경 |
↑ (위로부터)칼라이쿰 호스텔과 호스텔의 식사 메뉴, 파미르 산맥에 둘러싸인 칼라이쿰 마을 전경과 강 사이로 조성된 주택과 건물들 |
“셰어택시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다”던 두샨베 호스텔에서 만난 여행자의 후기가 퍼뜩 와 닿는 타이밍이었다.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셰어택시는 나타났다”는 그의 후기까지 믿어도 될까 고민해볼 타이밍이기도 했다.
↑ 파미르 산맥에 둘러싸인 칼라이쿰 마을 전경 |
산길 넘고 국경선 따라
계획대로 둘째 날의 목적지는 호로그까지 간다. 지난밤 같은 숙소에 묵고 있던 여행자들의 현지 가이드가 소개해준 사람이 다시 그의 지인을, 그 지인이 다시 그의 지인을 소개했고, 그 지인이 운전사 한 명을 우리 숙소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것. 다음날 아침 셰어택시 운전사는 약속한 시간보다 한 시간가량 늦게 나타났다. 여러 번 전화를 해도 받지 않던 그가 늦게라도 나타나준 게 감지덕지한 상황. 일행 모두 한숨을 돌렸다. 운을 기다리지 않고 운이 따라오게 하는 것. 셰어택시를 찾는 과정에서 얻은 가르침이다.두샨베에서 칼라이쿰까지 첫날의 이동거리를 한번 더 반복하면 호로그에 닿을 거라 생각했다. 사실 거리상으로 따지면 칼라이쿰에서 호로그까지는 약 250km로, 두샨베에서 칼라이쿰까지 약 350km를 이동했던 첫날에 비하면 소요시간이 줄어야 하는 게 상식적인 계산이다.
↑ 공사로 인해 호로그행 도로통행이 금지되기도 했다. 사진은 아프가니스탄 마을의 논과 밭 풍경 |
진흙으로 지은 벽돌 집과 농장, 그 한 편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뛰어 노는 아이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하고 평온한 하루의 풍경이다. 둘째 날의 여정은 오직 국경선을 따라 이동으로 하루를 채웠다. 아침 10시 무렵 출발한 셰어택시는 일몰이 내려앉고도 한참이 지난 까만 밤이 되어서야 호로그에 도착했다.
↑ 국경선을 따라 호로그로 향하다. |
파미르의 수도, 호로그
해발 2,200m에 위치한 호로그는 파미르 산맥에 걸쳐 있는 도시와 마을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지역이다. ‘파미르의 수도’라 불리는 이유다. 호로그 중심가에는 대형 시장과 대형 마켓, 다수의 레스토랑과 호텔이 들어서 있는데, 두샨베를 떠나 이틀 만에 도착한 호로그는 두샨베 못지 않은 현대화된 거대 도시의 이미지를 풍겼다. 파미르 하이웨이 여행에서 도시의 편안함을 제공받고 즐길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 호로그이기도 했다. 특히 카페나 식당은 호로그를 벗어나면 아예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좌측 위로부터 시계방향)해발 2,200m에 위치한 호로그 중심가, 호로그의 상징물인 포플러나무, 호로그 중심가에 자리한 대형 마켓, 호로그 식물원으로 가는 길 |
최근 몇 년간 와이파이를 제공하는 대형 호텔과 게스트하우스 등이 들어서면서 파미르의 수도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일 년 중 기후가 가장 따뜻한 7월과 8월이 최적의 여행시즌이다. 이때 전 세계에서 온 여행객이 이 도시로 몰린다.
↑ 호로그 전망대에서 바라다본 도시 전경 |
호로그에서의 현대 문명이 반가워 계획과 달리 하루 더 머물렀지만 이제 문명을 뒤로하고 다시 떠날 때가 왔다. 진짜 파미르 하이웨이를 달릴 시간. 한데 중요한 건 또 다시 셰어택시가 잡히지 않는다.
▶▶ 다음 편에서 파미르 하이웨이 여행 2편이 이어집니다.
↑ 챗GPT로 요약한 파미르 하이웨이 여행기 1편 |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0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