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김원익 기자] 프로야구 선수들은 지름 7.2cm, 무게 140g 안팎의 야구공을 다룬다. 던지고, 치고, 달리고, 받는다. 마운드에서 홈플레이트까지 거리는 18.44m. 불과 0.2초 안에 스윙여부를 판단해야 하고, 0.44초 이후 희로애락은 갈린다. 그런면에서 야구 선수들은 공을 다루는 능숙한 기술자인 동시에 장인이다. 매번 순간의 선택에 직면한다. 이런 능력을 꾸준히 유지하는데는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역할이 추가된다. 바로 공인의 자격이다. 팬들을 위해 존재하는 선수로서 경기장 안팎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약속이다.
그런데 최근 프로야구에서 두 건의 사건이 발생했다. 넥센히어로즈의 내야수 김민우는 9일 무면허 음주상태로 접촉사고를 범해 30경기 출장금지와 벌금 1000만원의 징계를 받았다. 10일 김태균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라디오볼’ 방송에서 ‘상대하기 힘든 투수와 구질’을 묻는 질문에 “유먼의 검은 얼굴 때문에 유난히 하얀 이가 튀어 공이랑 구분이 잘 안가서 상대하기 힘들다”고 대답한 것으로 소개돼 인종차별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두 건은 선수들의 사정과 행위의 강도는 다르지만 공인의 의무를 기망하고 팬들을 기만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음주운전과 무면허는 한국 사회에서 도덕성이 결여된 강력사고로 여겨진다. 행위의 파장이 타인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음주운전은 공인들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이기도 하다.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다른나라에 비해서 부족한 사회의 풍토 때문이다. 이것이 절대 면죄부는 될 수 없다. 역설적으로 이것이 공인들 스스로 더한 도덕심이 요구되는 이유이고, 넥센이 먼저 나서 김민우에게 중징계를 내린 이유다.
김민우 스스로는 프로선수들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극심한 스트레스에 직면했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존재하는 선수라는 본질을 망각한 심각한 실수다. 음주운전 사고가 불러오는 파장은 개인의 사고 그 이상인 것처럼 야구를 즐기는 대중들이 받은 실망감과 상처는 매우 광범위하고 크다. 유독 왜 프로야구에서 음주사고가 자주 발생하는지 대중들이 의문을 갖고, 어떤 확신을 내리게 된다면 야구라는 산업 전체는 왜곡될 수 밖에 없다.
김태균은 10일 논란이 발생한 이후 “먼저 이번 일의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롯데자이언츠 쉐인 유먼 선수 에게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최초 야구전문 기자분의 질문에 대해 유먼 선수의 투구폼이 타자 입장에서 공략하기 어려운 훌륭한 선수라는 뜻으로 말한 부분이 아쉽게 전달된 것 같습니다”라고 해명했다. 물론 해당 사건은 김태균이 발언한 것이 아니라 설문내용을 진행자가 전달했다는 점이 다르다. 김태균이 직접적으로 피부색을 거론하지 않았다 해도 외국인 투수의 외모를 빗대 언급했다는 자체만으로 심각한 인종차별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좋은 투수의 가치는 그가 던지는 구질, 운영능력, 제구력, 구위 등의 다양한 경쟁력과 관련된 것이지 외모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김태균의 발언은 고의적인 차별의 의미를 둔 발언이 아닐 수 있다. 김태균 스스로도 사회기부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실천하는 선수인만큼 해당발언은 실수였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세계 대부분의 사회에서 피부색을 빗댄 ‘black’이란 단어는 금기어 중의 금기어다. 바꿔 말하면 동양인들의 피부색을 빗댄 ‘yellow’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인종차별 사안은 리그 퇴출도 검토될 만큼 심각한 사안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1999년 38세이브를 올린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마무리 투수 존 로커는 “뉴욕은 동성연애자와 흑인 등이 득실대 가기 싫은 곳이다. 특히 메츠의 홈구장 셰이스타디움으로 가는 지하철 7번 라인은 ‘더러운’ 아시아계와 히스패닉계들로 가득 차 있다”는 발언을 한 이후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끝내 퇴출됐다.
각종 비난에 빠져 기회를 얻지 못했고 가진 능력에 비해서 초라한 퇴장을 해야했다. 메이저리그는 ‘재키 로빈슨 데이’를 지정, 미국 사회에서 스포츠를 통해 인종차별과 갈등을 해소한 재키 로빈슨을 기린다. ‘인종차별’ 해소가 미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동시에, 스포츠의 정직한 파급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스포츠는 약물과 함께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서 가장 강한 중징계를 내린다. 이 두가지를 스포츠에서 없애야할 1순위의 문제로 꼽고 있기 때문이다.
야구를 즐기는 팬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선수들의 파급력은 매우 높다. 팬들의 충성도는 매년 100여경기가 넘는 순간들에 집중하고 관심을 갖고,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할 정도로 매우 뜨겁다. 그렇기에 프로야구선수들은 공인이다. 공인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혜택만큼 그에 걸맞은 의무와 책임을 지닌다. 현재 프로야구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공인의 자격’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은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이다. 구단과 리그사무국의 심도있고 엄격한 교육을 통해, 팬
돌아와 프로야구 선수들은 ‘장인’이다. 동시에 ‘공인’이다. 갑과 을의 관계를 다시 떠올려야 할 의무가 있다. ‘공의 경계’에서 고민하는 선수들은 스스로를 무엇으로 부를지 다시 한 번 떠올려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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