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천식과 함께 폐 및 신장질환을 앓았던 환자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으로 사망하면서 만성질환자들이 왜 바이러스에 위험한가에 대한 궁금증이 높다.
지난 1일 사망한 S씨(58·여)는 천식을 앓고 있었으며 주치의 역시 “메르스 감염 후 임상경과 악화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사망자 F씨(71)씨 염증성 중증 폐질환인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COPD)을 앓아왔고 2011년 신장암으로 신장 척출술을 받았다. 4일 숨진 80대 남성도 천식, 세균성 폐렴을 앓고 있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은 “50대 이상 고령자, 만성질환 보유자, 면역상태가 떨어진 환자는 메르스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쉽다”며 “메르스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와 마찬가지로 폐에 침범하며, 사스와는 다르게 신장 기능을 망가뜨리는 특성이 있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만성폐질환, 신부전(콩팥병), 당뇨, 면역저하 환자를 메르스 감염의 고위험군으로 분류하고 있다. 면역력 저하 환자군에는 암환자를 비롯해 항암제나 장기이식 후 거부반응을 막기 위한 면역억제제, 스테로이드 등의 약물을 사용하는 환자들이 포함된다. 첫 번째 사망자 S씨는 관절염 치료를 위해 스테로이드를 복용해 인위적인 면역저하 상태에 있었다고 복지부는 설명했다.
바이러스는 왜 만성질환자나 면역력이 약한 사람에게 치명적인가? 이는 바이러스의 특성 때문이다. 세균(Bacteria)은 영양분만 있으면 혼자 알아서 자라지만, 바이러스는 스스로 증식할 능력이 없어 살아있는 숙주세포 안에 들어가서 빈대처럼 달라붙어야 자란다. 바이러스가 좋아하는 생존환경은 ‘낮은 온도’와 ‘낮은 습도’다. 한겨울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가 유행하는 이유도 낮은 기온과 건조함 때문이다. 김정기 고려대 약대 교수는“요즘 한국 날씨는 낮에 덥지만 밤이 되거나 실내에 들어가면 선선하고 습도도 낮아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가 살기에 좋은 환경”이라고 말했다.
바이러스 입자 크기는 평균 직경이 100nm(1만분의 1mm)로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해야 겨우 볼 수 있다. 바이러스는 근본적으로 동물세포를 터전으로 생존한다. 바이러스 전파는 침방울(비말)을 통해 이뤄진다. 직경이 5μm(μm=100만분의 1m)보다 작은 침방울을 에어로졸(aerosol), 이보다 큰 침방울을 비말(droplets)이라고 부른다. 에어로졸은 너무 작아서 증발해 사라질 가능성이 높지만 큰 침방울은 다른 사람 호흡기로 들어가 코나 기관지 등 상부 호흡기 점막에 달라붙는다. 작은 비말입자는 수분 증발이 되면 쪼그라지면서 비말핵이 되어 폐포까지 침투한다. 사람의 폐 흡수면적은 약 80~120㎡이고 1분간 12~20회쯤 호흡을 하며 약 6ℓ의 공기를 흡입한다.
그러나 폐 기능이 떨어져 있는 만성 질환자는 폐활량과 기능이 떨어져 공기(산소)순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당연히 폐포까지 도달한 바이러스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폐에 달라붙어 서식하면서 폐조직을 파괴시키는 염증(폐렴)을 일으키고 여러 가지 폐질환을 유발한다. 호흡기가 건강해야 산소가 풍부한 맑은 공기를 마셔서 폐를 통해 뇌와 심장에 깨끗한 산소를 공급한다. 맑고 깨끗한 산소는 혈액과 함께 혈관을 타고 우리 몸 구속구석을 돌며 나쁜 병원균을 죽이고 각종 장기들을 튼튼하게 해준다. 면역력이 증강된다는 얘기다.
폐기능은 나이가 들면 떨어진다. 호흡기 기관에 있는 섬모세포들의 숫자가 줄고 남아있는 세포들도 기능이 약해진다. 노인들이 호흡기 질환에 취약하고 폐렴이 주요 사망원인중 하나가 된 것은 자연의 순리라고 볼 수있다.
신장(콩팥)질환자도 바이러스 공격에 취약하다. 콩팥은 자동차 연료필터 또는 부엌 싱크대의 찌꺼기 제거망처럼 우리 몸속 노폐물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콩팥의 사구체여과율이 감소됐다는 것은 정수기 필터기능이 떨어졌다는 얘기와 같다. 콩팥은 또 건강한 뼈와 적혈구의 생성에도 영향을 미치며 수분과 분해질 조절, 혈압조절에도 관여하는 매우 중요한 장기다. 따라서 신체 각 부분이 적절히 작동할 수 있게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콩팥에 이상이 생기면 다른 장기들도 함께 영향을 받아 각종 합병증을 유발한다.
무엇보다 콩팥 기능이 떨어지면 몸 안 수분이 많아져 바이러스가 서식하기 좋은 상태가 된다. 신장질환자는 물을 마시고 짠 음식을 먹게 되면 신장기능이 떨어져 있어 소변을 통해 수분을 몸밖으로 잘 배출하지 못한다. 따라서 몸안에는 물이 많다. 몸안에 남아도는 수분은 스폰지형태의 꽈리나 수용성 섬유질, 모세혈관 등에 고이게 된다. 스폰지에 물이 흡수돼 촉촉한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 몸에서 물이 잘 고이는 곳은 폐, 신장, 심장, 눈 주위 등이다.
김성권 K내과원장(전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교수)은 “수분이 고여 있으면 산소공급이 안되고 면역력과 직결되는 백혈구도 침투할 수없어 폐부종 또는 전신부종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김성권 원장은 이어“물끼에 젖어있는 스폰지에 바이러스나 세균이 서식하기 쉽듯이 폐나 신장질환자의 폐나 신장에 세균이 잘 자라고 바이러스가 창궐할 수있다”고 설명했다.
당뇨와 신장병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어 당뇨병을 앓게 되면 8년후 투석이 필요할 정도로 신장기능을 망가뜨린다. 제1형 당뇨병환자의 20~40%, 제2형 당뇨병환자의 10~20%가 만성 당뇨병성 콩팥병을 앓고 있다.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가 몸 안에 들어가도 별 탈 없이 건강을 회복하는 지름길은 면역력을 키워 장기를 튼튼하게 하는 것이다. 김성한 서울아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건강한 사람의 메르스 사망률은 평소 중한 지병을 가진 환자들보다 훨씬 낮으므로 요즘처럼 감염병이 나돌 때는 각자 스트레스를 덜 받고 충분한 휴식과 수면을 취해 병에 대한 면역력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건강한 폐를 유지하는 비결로 △숨은 길고 깊게 쉬어라 △입이 아닌 코로 숨을 쉬어라 △자주 웃어 많은 공기를 마셔라 △실내공기를 맑게 유지하라 △담배를 끊어라 △운동과 목욕으로 폐를 깨끗이 하라 △삼림욕과 풍욕을 즐겨라 등이 손꼽히다.
강재헌 인제대 서울백병원 교수는 “깊이 숨을 쉬면 폐와 혈관의 강력한 확장제인 산화질소를 코 부위에서 폐로 운반하는 것을 도와줘 폐와 혈관기능이 더 좋아진다”며 “이는 몸에서 독소를 제거하는 림프계 순환을 향상시켜
깊은 숨은 들이쉬는 데 5초, 내뱉는 데 7초쯤 유지해야 한다. 5초동안 숨을 들이쉬면 횡격막이 폐를 아래로 당기고 배꼽은 등뼈에서 더 멀어지고 가슴은 넓어진다. 또 7초 동안 숨을 내쉬면 배꼽이 등뼈 쪽으로 가까워지고 복근 운동도 된다.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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