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정치드라마라는 장르, 이름만 들어도 숨이 ‘턱’ 막히는 이유는 뭘까. 이는 ‘정치’에 대한 대중의 불신과 정치드라마를 제한적 틀에만 집어넣으려는 통념적 장르 구분 때문이다.
지난 달 15일 방송을 시작한 KBS2 수목드라마 ‘어셈블리’는 배우 정재영, 송윤아, 장현성, 박영규, 김서형 등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한다는 이유로 출격 전부터 많은 기대를 일으켰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동시간대 방송된 SBS ‘용팔이’나 MBC ‘밤을 걷는 선비’보다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인 4%대의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이는 다소 답답한 스토리라인이 꼽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정치드라마’라는 장르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초반 시청률 유입에 실패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드라마의 황인혁 PD는 제작발표회에서 “정치드라마라고 하면 낯설고 힘들다고 생각할 수 있고, 비판과 풍자 쪽으로 쏠릴까 우려하는 분들도 계신다”며 시청자 사이에는 정치드라마에 대한 편견이 있음을 인정하기도 했다.
↑ 사진=아이리스 포스터(위)/24(아래) |
이처럼 정치드라마는 기대작의 발목을 잡을 만큼의 강력한 ‘장르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흔히 우리나라에서 정치드라마를 향해 ‘낯선 도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하는 것인데, 이는 정치를 스릴러, 코믹, 심리 등 다양한 장르로 응용하는 해외의 기조와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에는 “미국등 선진국들은 이미 정치관련 내용이 드라마 소재인 픽션으로 쓰일 정도로 일상화가 진행되었으나, 동아시아권은 민감한 현대사와 그리고 현재 집권층의 영향 때문으로 사실을 다루는 정치드라마를 자주 쓰기 어렵다”고 소개하고 있다. 정치가 발전해온 과정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라는 것.
이외에도 전문가들은 정치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과 공감대 부재, 나아가서는 정치 불신이 정치드라마를 외면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진단한다.
논문 ‘한국 픽션 정치드라마의 정치 재현’(2012, 조수현)에서는 “전국 16개 광역시·도 인구 비례에 따라 추출한 표본 1000명에게 33개 직업군을 예시하고 개별 직업군에 관한 신뢰도를 물은 결과 정치인은 꼴찌를 차지했다”는 실험 결과를 인용해 정치를 향한 대중의 불신을 설명했다. 이런 불신은 미디어에 빠르게 흡수되고 그 중에서도 TV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이런 대중의 불신을 수용하고 있다.
이런 대중의 불안감과 정치에 대한 불신은 현 정치권을 화두로 과감한 토크를 벌이는 ‘나는 꼼수다’ ‘강적들’ ‘썰전’ 등의 인기로 이어지며 정치를 풍자하는 각종 개그 프로그램들(KBS2 ‘사마귀유치원’ ‘민상토론’, tvN ‘SNL코리아’ 등)도 큰 관심을 받았다. 이에 비례해 정치 역사를 재연하거나 정치권을 그대로 묘사하는 데에 그치는 정치드라마는 외면을 받게 됐다. 풍자나 직설적 비판 없이 ‘현실에서 보던 것을 그대로 다시 보여주는’ 드라마를 통해 대중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 사진=미국의 정치를 주제로 한 드라마 (위:웨스트윙/아래:하우스 오브 카드) |
그동안 정치드라마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한 이미지를 쌓게 된 것은 정치드라마를 역사 재연의 장르로 구분 지었던 틀에 박힌 개념 때문이었다. 논문 ‘2천년대 TV정치드라마의 대통령 이미지 분석’(2011, 윤대주)에서는 이에 대해 “정치는 역사라는 인식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기록된 과거사의 재연이라는 한계를 두고 이를 드라마로 만드는 것이 정치드라마라고 간주됐기 때문에 정치드라마의 폭이 넓어질 수 없었다는 분석이다.
같은 논문에서는 미국드라마 ‘24시’와 한국드라마 ‘아이리스’ 시리즈를 비교하며 해외와 우리나라의 ‘정치드라마’ 개념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24시’는 미국에서 정치드라마 혹은 정치스릴러로 분류된다. 주인공 잭 바우어가 핵폭발 테러, 이슬람 자살 테러, 국방장관 납치 등 정치적 사건이 소재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이리스’도 마찬가지다. 분단문제, 대북갈등, 핵폭탄 테러, 대통령 암살 등 정치적 코드가 ‘24시’와 비슷한 양상으로 심어져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아이리스’를 정치드라마로 분류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애매하고도 제한적인 정치드라마의 정의가 더 다양하고 폭 넓은 정치드라마의 제작을 방해하고 정치드라마에 대한 편견만 크게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변화의 조짐은 있다. 수 십 년간 방송의 정치적 가이드라인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제작 구조, 한정된 수용방식이 개선될 요지가 조금씩 드러났다. ‘시티홀’(2009) ‘대물’(2010)이나 ‘야왕’(2013) ‘펀치’(2014) 등 재연이 아닌 픽션에 현 정치 상황을 가미한 드라마들이 지속적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이런 시도들은 틀에 박힌 장르에서 벗어나 다양한 요소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며 대중에 만들어진 정치드라마의 ‘벽’을 낮추는 데 일조하고 있다.
◇참고 문헌
* ‘한국 픽션 정치드라마의 정치 재현-시티홀, 대물, 프레지던트를 중심으로’(2012, 조수현)
* ‘2천년대 TV정치드라마의 대통령 이미지 분석’(2011, 윤대주)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