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보호무역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특히 미국 대선후보들이 보호무역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대외경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미칠 타격에 대한 염려가 커지고 있다.
과거에도 미국은 경기 침체 속에서 정권 교체기까지 겹치면 강도 높은 보호무역 정책 기조를 보여왔다. 지난 2001년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한국산 철강제품 등에 대해 긴급 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발동했던 게 대표적이다.
7일 산업통상자원부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이 국내 주력수출품인 철강과 가전 분야에서 잇따라 덤핑판정을 내리면서 한국 기업의 대미 수출 전선에 빨간불이 켜졌다.
코트라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미국은 한국산 제품에 대해 모두 21건의 수입규제 조치를 취하고 있다. 품목별로는 철강·금속이 18건, 전기전자 2건, 섬유 1건 등이다.
특히 국내 철강업계가 전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신(新)보호무역주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반덤핑 등 수입규제를 받는 국산 철강·금속 품목은 올해 초 74개였던 것이 지난달 말에는 87개로 13개나 늘었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에서 보듯 각 나라 국민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세계 경제와 정치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지난 2년 간 세계 각국 정부의 보호무역 조치가 20% 가까이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5일(현지시간) 포스코 등 한국산 열연강판이 ‘관세폭탄’을 맞기 이전에도 미국은 지난달에만 한국산 제품에 대해 모두 3건의 수입제한조치를 내렸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중국산 삼성전자와 LG전자 가정용 세탁기에 대해 각각 반덤핑 예비관세 111%와 49%를 부과했다. 2012년 한국산과 멕시코산 삼성·LG전자 세탁기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가 세계무역기구(WTO)로부터 패소한 전례가 있는데도 또다시 중국산 한국 제품에 대해 무리한 덤핑 예비판정을 내린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의 북미 세탁기 시장점유율이 크게 뛰자 미국 가전 1위업체인 월풀이 시장견제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과 LG 모두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항소할 계획이다.
미국은 지난달 21일과 22일(현지시간)에도 각각 내부식성 철강제품과 냉연강판에 대해서도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확정했다. 사흘 연속 보호무역주의 장벽을 높게 쌓아 올린 셈이다.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의 내부식성 철강제품(도금판재류)에 대해 최대 48%, 포스코와 현대제출의 냉연강판에 대해서는 최대 65%의 높은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이밖에도 미국은 한국산 용접각관, 구리모합금, 페로바냐듐, 탄소 및 합금강판 등 철강제품에 대한 관세조사를 진행 중이어서 수입규제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미국 철강업계가 중국산 저가 공세를 철퇴하기 위해서 다른 수출국까지 전방위적인 조사에 나섰다”며 “미국과 중국 간 통상전쟁 속에 한국이 피해를 입은 격”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의 수입규제 분위기는 화학 분야로까지 번지고 있다. 미국 화학기업 라이언엘라스토머 등이 지난달 24일 국제무역위원회(ITC)에 한국산 에멀전 스타이렌-부타디엔 고무(ESBR)에 대해 반덤핑 제소를 했고, 지난 6월에는 미국 이스턴케미칼이 한국산 가소제의 덤핑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며 한국 기업 11곳을 지목해 덤핑 제소했다.
업계에서는 국내 기업 피해가 커지기 전에 정부가 적극 나서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준성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양자간 협의 등 보호무역에 대한 정부 차원 대응이 필요하다”며 “WTO 제소는 최후의 방법이고, 이전에 다양한 정부
이와 관련해 주형환 산업부 장관은 “철강 외에도 섬유, 고무 등 관세덤핑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업종을 다 묶어 여러 업종이 공동대응할 것”이라며 “대응할 수 있는 통상채널을 총동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욱 기자 / 고재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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