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남연우 사진=김상구 작가 제공 |
배우 남연우가 영화 ‘분장’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오롯하게 담아냈다. ‘분장’은 무명 연극배우 송준(남연우 분)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소수자 연극 ‘다크라이프’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며 펼쳐지는 비밀과 거짓말에 관한 치명적인 이야기를 그렸다.
성소수자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룬 만큼 남연우는 끝없는 고민을 거쳐 스크린에 올렸다. 조심스럽게 빚어냈지만 남연우가 전한 ‘분장’의 메시지는 묵직했고, 깊었다. ‘분장’을 통해 ‘진짜 나’에 대해 곱씹게 만들었고, 남연우의 연기관까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남연우는 많은 대중들에게 낯선 얼굴일지 몰라도 독립영화계에서는 이미 연기력으로 정평이 난 배우다. 그는 2010년 영화 ‘진심을 말하다’로 데뷔해, ‘용의자X’, ‘가시꽃’, ‘우는 남자’, ‘나의 독재자’,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부산행’,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석조저택 살인사건’ 등 다수의 작품에서 진득하게 연기력을 펼쳐냈다.
‘분장’, 개봉 한 지 한 달이 조금 지났다. 주위 반응이 어땠나.
“보는 사람들은 좋아하는데, ‘분장’ 자체를 모르는 분들이 많아서 노출의 벽을 실감 하고 있다. 영화를 본 분들은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나를 들여다 본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하셨다.”
영화를 직접 본 소감은 어떤가.
“만족도는 50% 정도다. 제가 시나리오를 쓸 때 그렸던 그림이 잘 담겼는지를 판단했다. 제 머릿속에 있던 상상의 세계를 얼마나 그대로 옮겼고, 아니면 생각과 어떻게 다르게 그려졌는지를 체크했다. 그래서 다음 작품 할 때는 조금 더 제가 처음 그렸던 상상력을 그대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들었다.”
성소수자의 얘기를 담았다.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
“예술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뒷풀이 자리에서 제가 모르는 테이블 사람들이 ‘동성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토론이 펼쳐졌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각적으로 ‘이해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의문이 들었다. 이해한다는 사람들이 ‘진짜일까’ 라는. 그 생각을 쫓아가다가 제 주변에 있는 동성애 친구한테 말했더니 그 친구가 ‘다들 앞에서는 이해한다고 하고 뒤에서 다른 얘기를 한다. 차라리 앞에서 이해못한다고 하는 게 낫다. 그게 덜 폭력적이다’ 라고 하더라. 이 이야기를 영화화하면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소 민감한 소재인데, 영화를 만드는데 걱정은 없었나.
“많았다. 저보다도 주위에 친구들이 많이 걱정했다. 동성애 코드가 들어가니까 잘못하면 의도와 다른 오해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주위에서 ‘위험할 수 있으니 하지 말라’고 했다. 저도 고민을 했었다. 살면서 동성애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크게 갖지도 않았기에 그 부분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는데 이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고 싶었다. 대신 과장되지 않게 담으려고 노력했다. 누구에게도 폭력적이지 않은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감독과 동시에 주연배우로 출연했다. 그만큼 고충도 컸을 것 같다.
“원래 연출과 연기를 다르게 생각하지 않는다. 제가 항상 저의 은사님인 최용진 선생님을 많이 얘기하는데 선생님의 수업이 조금 독특했다. 늘 논리만 알려주셨다. 인간의 원리만 파악해서 훈련하면 된다고 하셨다. 텍스트를 받으면 이유를 찾는 일을 많이 했다. 그게 너무 재밌었다. 그때 수업이 제가 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 힘을 길러준 것 같다. 연기할 때도 논리만 찾아서 하는 경향이 있어서 연출과 다르게 보지 않는다. 이전에 했던 단편 영화에서 연출과 배우를 같이 했을 때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 이번에는 괴로움이 즐거움을 덮은 적이 많았다. 그 이유는 제작비였다. 하루에 찍어야할 분량이 적으면 더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감독과 배우, 한 역할에 집중할 수 있지 않았나. 어떻게 두 역할을 동시에 맡게 됐나.
“방법이 없었다. 연기는 하고 싶고, 이 작품을 연출한다는 사람도 없었다. 연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연출까지 하게 됐다. 제가 만약 배우의 재능이 뛰어났다면 ‘분장’은 없었을 거다. 그러나 아직까지 저에게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많지 않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 같다. 워낙 어릴 때부터 이야기 쓰는 걸 좋아했다. 이런 작은 재능을 살려서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배우들도 직접 캐스팅 했나.
“배우들도 전부 다 직접 캐스팅했다. 제가 평소에 좋아하고, 함께 호흡하고 싶은 배우들이다. 연출하면서 좋은 점은 같이 호흡하고 싶은 배우들을 모을 수 있다는 거다.”
‘분장’에서 무명배우 오송준 역을 맡았다. 어떤 점에 중점을 두었나.
“저는 원래 변화하는 걸 좋아한다. 남연우의 행동이 많은 것 보다 인물의 행동이 많이 담기는 걸 좋아한다. 그걸 중점으로 하고 싶었는데, 이번에는 그게 잘 안된 것 같아 많이 아쉽다.”
오송준이라는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어떻게 접근했나.
“시나리오 단계에서 많이 찾았다. 따로 준비했던 건 거의 없었다. 원래 제가 배우로만 참여할 때는 관찰을 많이 한다. 어떻게 보면 ‘분장’은 제가 연기를 하고 싶어서 연출을 하는 입장이지만 ‘분장’은 연출에 훨씬 더 에너지를 쏟았다.”
극중 동생이 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혼란을 겪는다. 반면 성소수자 연극 ‘다크라이프’ 주연으로서는 큰 활약을 펼쳤다. 아이러니한 상황인데, 어떤 의도를 담았나.
“첫 번째는 사람들이 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담고 싶었다. 자기 자신을 속이게 되고, 거기서 익숙해지는 것에 대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또 연기에 대해서도 배우가 느껴야 하는 건지, 보여야 하는 건지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저의 연기관은 배우가 느끼는 것보다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물이 할 법한 행동을 하는 주의다. 그러면 감정도 자연스럽게 들어온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 400석 되는 객석을 채우는 게 상당히 고생스러웠다고 들었다. 꽉찬 객석을 봤을 때의 감정은 어땠나.
“울컥했다. 정말 눈물이 났다. 분장을 하지 않았다면 울었을 것 같다. 그때 저는 밑에서 다른 장면을 촬영 하고 있었고, 촬영이 없는 배우들이 밖에 나가서 관객들을 안내했다. 촬영하다가 궁금해서 올라가봤는데 400석이 꽉 차있었다. 보자마자 울컥했다. 그리고 밖에서 안내했던 홍정호 배우와 오도이 음악감독은 울었다. 그냥 기적이라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그 장면이 영화를 더 최선을 다해 만들어야 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해줬다. 그때 오신 분들은 메일 주소를 받아서 초대권을 전해드렸다. 또 관객 중 절반은 지인 배우들이었는데, 아마 우리 영화가 배우들이 가장 많이 나오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 배우 남연우 사진=음악감독 오도이 제공 |
배우로서 하고 싶은 연기,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은 것 같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함께하는 동료들과 항상 영화 얘기를 많이 한다. 그 안에서 나왔던 얘기들, 뉴스나 다큐를 봤을 때 느껴지는 생각을 쫓는 일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배우로서 변화가 큰 역할을 해보고 싶다. 예를 들면 영화 ‘127시간’ 의 제임스 블랭크. 원래는 제가 막혀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는데, 지금은 조금 유해졌다. 제임스 블랭크처럼 거침없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
언제부터 배우를 꿈꾸게 됐나.
“제가 고등학생 때까지 비보이를 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TV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을 보고 따라했다. 그때 학예회 때 처음으로 무대에 섰는데, 내성적인 남연우가 세상에 존재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 때는 비보이로 세계 최고가 돼야겠다는 꿈을 꿨는데, 우연히 비보이가 필요한 독립영화를 접했다. 현장에서 각자 위치에서 한 목표로 만들어가는 구성원이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그런 구성원을 만들고 싶었고, 또 내 모습이 담긴 다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막연하게 시작했다.”
지금까지 배우의 길을 걸으면서 가장 지쳤던 순간은 언제인가.
“배우를 하면서 그만 둬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 항상 비슷했다. 힘들었을 때는 경제적으로 부딪혔을 때. 그러면서도 계속 꾸준히 걷다 보니 다양한 작품을 만나게 됐다. 그래서 항상 작은 것에 감사하려 한다. 이유 모를 저에 대한 자신감으로 ‘버티면 되겠지’, ‘즐겁게 하면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왔다.”
반면 가장 힘났던 순간은 언제인가.
“저희 형이 조카를 낳았을 때. 내가 지켜야 하는 조카가 생겼다. 멋있는 삼촌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배우로서 성공해야 할 이유가 굉장히 많다. 배우로서 잘 돼서 감사한 분들에게 다 보답하고 싶다. 또 힘났던 순간이 하나 떠올랐는데, 2014년 ‘제1회 들꽃영화상’이 굉장히 컸다. 그 해 운 좋게 ‘가시꽃’으로 남우주연상 노미네이트가 됐다. 관계자분께 감사한 마음에 소설책을 하나 사서 선물하려고 시상식에 갔다. 턱시도를 빼입고 온 배우들을 보면서 ‘아 저분들이 받는구나’ 했는데, 정말 아무 예고도 없이 제 이름이 호명 됐다. 아무 준비없이 무대에 올랐고, 그 때 수상소감으로 ‘어쨌든 배우를 하겠다고 걸어온지 10년이 됐는데, 이 상 덕분에 앞으로도 묵묵히 10년을 걸을 수 있겠다’고. ‘들꽃영화상’에 평생 보답하겠다(웃음).”
다시 태어나도 배우를 하고 싶은가.
“배우는 참 멋진 직업인 것 같다. 다음 생에도 배우를 하고 싶다.”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인가.
“이번에 부산마켓에 간 작품을 준비 중이다. 최대한 ‘분장’팀과 함께 하려 한다. 최용진 선생님은 중요한 역할로 대화중이
대중들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나.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고 남연우에 대해서가 아닌 역할에 대해서 얘기했으면 좋겠다. 남연우의 연기실력에 대한 평가를 떠나 역할로서 기억되고 싶다.”
김솔지 기자 solji@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