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간의 파미르 하이웨이④
13시간 달려 도착한 두샨베
자전거와 바이크 여행자와의 만남
13시간 달려 도착한 두샨베
자전거와 바이크 여행자와의 만남
↑ 파미르 카피르 요새로 향하는 길 |
가장 추웠던 밤, 부룬쿨에서
↑ 파미르에서 가장 날씨가 추운 지역, 부룬쿨 마을에는 50여 가구가 거주한다. |
마치 오래 비워둔 그리웠던 집으로 돌아가는 것마냥 결말의 시작에 벅찬 감정만이 요동을 친다. 원래 있던 곳, 있어야 할 곳으로 잘 돌아가기 위해 머나먼 여정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시작된 결말의 종막. 그 첫날밤을 장식할 호수마을 부룬쿨(Bulunkul)은 무르갑에서 서쪽으로 약 1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 (위 좌측부터 시계방향)부룬쿨 마을 홈스테이 저녁 밥상에 올라온 귀한 생선튀김, 홈스테이 외부 전경, 부룬쿨 마을 상점과 마을 전경 |
주변에 나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황폐한 곳, 흐르는 물이나 전기의 흔적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오지마을에서 최고의 보물은 고원에 서식하는 야크(Yak) 무리들이다. 야크에서 짜낸 우유와 버터는 주민들의 에너지원이며, 배설물은 이 마을의 유일한 연료다.
↑ 야크의 배설물은 이 마을의 유일한 연료다. |
↑ 야실쿨 호수 |
찬란한 햇볕 그리고 온천과 요새
파미르의 낮과 밤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햇볕이 최고조에 이르는 한낮이 되면 지난밤의 추위는 물론 심신을 에워싸고 있는 온갖 고민과 잡념이 사라지고 평온함만이 감돈다. 파미르의 찬란한 햇볕 아래 몸을 맡기고 나면 그 어떤 것도 용서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가 자라난다. 어떠한 고민도 파미르에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다시 호로그로 향하는 길목에 마주한 젤룬디 온천(Jelondy Hot spring)이 선사한 실망감도 그렇게 지워버렸다.↑ (좌로부터)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젤룬디 온천, 불교사원으로 사용된 카피르 요새 벽면, 고고학적 유적지, 카피르 요새 전경 |
이곳 관리자에게 물의 온도가 너무 높다는 항의를 재차 해보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온도를 낮춰준다 한들 이물질 가득한 더러운 온천수는 또 어찌하랴. 구소련 당시 최고의 온천으로 각광받았다던 명성은 소련 해체와 더불어 몰락한 모양새다. 귀곡산장처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온천을 밤이 아닌 낮에 방문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 군트 강과 주변 마을 전경 |
요새의 궁전 단지는 한때 불교사원으로 사용된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서기 7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불교 그림과 불교 내용으로 보이는 비문이 이곳에서 발견됐기 때문. 현재 이곳 요새에는 파괴되고 부서진 일부 벽면만이 남아 있으며, 고고학적 유적지의 기능은 물론 군트 강과 주변 마을을 조망하기 위한 전망대로서도 기능한다.
마지막 이동의 끝, 다시 두샨베에 닿다
↑ 다시 찾은 호로그 공원 |
일주일간 운전대를 잡았던 네크루스(Nekrus)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생각에 작별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성급히 우리 일행 곁을 떠났다. 어디서나 퇴근은 빠를수록 좋은 법이다. 호로그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숙소 주인의 도움으로 두샨베까지 이동할 셰어택시를 예상보다 쉽게 구했다. 14시간의 이동을 한날에, 한 번에 끝내기로 했다. 두샨베로 향하는 길에서 같은 듯 다른 점은 여정 초기 이틀에 나눠 이동했던 거리를 한달음에 쉬지 않고 달렸다는 것.
↑ 두샨베행 셰어택시를 타고 마침내 포장도로를 달리다 13시간을 달려 두샨베에 도착했다. |
이후 며칠간 호스텔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나의 관심은 온통 자신만의 교통수단을 가지고 파미르를 여행한 용감한 여행자들에게 꽂혀 있었다. 12일간의 파미르 하이웨이 여정을 마무리하며, 각각 오토바이와 자전거로 파미르를 여행한 두 명의 여행자, 이들의 용기와 경험, 에너지를 공유하고자 한다.
“고립된 곳에서 고립되지 않은 순간을 달립니다”
오토바이 여행자, 스튜어트 링거(Stuart Ringer)
“인구가 적은 고립된 지역일수록 라이딩은 외로움과의 싸움입니다. 두려움이나 무서움과는 거리가 멀어요. 오히려 흥분되는 일이죠. 영국을 떠나 파미르 하이웨이 여정을 시작하기까지 ‘고독’을 즐기기 위해 1만3,000km를 달려왔어요.” -오토바이 여행자, 스튜어트 링거(Stuart Ringer)오토바이 여행자, 스튜어트 링거(Stuart Ringer)
↑ ©Stuart Ringer(Instagram@roadtrip_mc) |
“파미르는 그야말로 ‘좋은 도전’이 될 것 같았어요. 인구가 적은 고립된 지역일수록 라이딩은 외로움과의 싸움입니다. 두려움이나 무서움과는 거리가 멀어요. 오히려 흥분되는 일이죠. 영국을 떠나 파미르 하이웨이 여정을 시작하기까지 ‘고독’을 즐기기 위해 1만3,000km를 달려왔어요.”(스튜어트)
↑ ©Stuart Ringer |
해발고도가 점점 높아지고 최악의 비포장도로를 만날 때면 파미르 고원 어디선가 혹독한 추위와 거센 바람을 맞아가며 달리고 있을 오토바이 여행자를 떠올리곤 했다. 과연 스튜어트에게도 혹독한 기후나 도로 사정이 최악의 순간으로 남아 있을까?
↑ ©Stuart Ringer |
스튜어트에게 오토바이를 타는 순간은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과도 같다. 그것이 그가 전 세계 20만 km를 달리게 한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일지도. 라이딩 과정에서 주변에 자리한 모든 자연과 생명을 오롯이 느끼고 경험하며 그것으로부터 고립되지 않는 순간을 향유하는 것. 추우면 그 찬 공기를 느끼고, 더우면 그 열기를 느끼는 것. 도로 표면의 모든 변화와 경사, 몸을 에워싼 땀과 먼지를 오감을 통해 받아들이는 것. 이 모든 것이 오토바이 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라 스튜어트는 단언한다.
↑ ©Stuart Ringer |
남자들은 커다란 터번을 썼고, 여자들은 일반적인 검은색의 부르카(Burka,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으로 감는 이슬람 여성 복장) 대신 수가 놓여진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죠. 그들이 제게 손을 흔들자 저도 곧장 손을 흔들며 화답했어요. 우리 사이를 가로막은 강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차를 마시며 일상의 대화를 나눴을 겁니다. 마치 이웃을 만난 것처럼요.”(스튜어트)
↑ ©Stuart Ringer |
“중요한 건 일단 멈추지 않고 달리는 거예요”
자전거 여행자, 앤서니 탄(Anthony Tan)
싱가포르 출신 앤서니가 자전거 페달을 밟기 시작한 건 2023년 6월 중순부터다. 카자흐스탄 알마티(Almaty)에서 시작된 그의 여정은 키르기스스탄을 거쳐 파미르로 향하고 있었고, 그를 만난 건 키르기스스탄의 한 시골마을에서였다. 약 한 달간의 파미르 탐험을 끝낸 그의 여정은 우선 천운이 따랐다.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 국경이 다시 개방된 직후 여정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키르기스스탄 오시(Osh)에서 출발해 타지키스탄 국경을 넘어 두샨베까지 이어지는 꿈의 여정을 두 바퀴에 의지한 채 실행에 옮긴 그에게 가장 먼저 두 나라의 국경 상황을 물었다.자전거 여행자, 앤서니 탄(Anthony Tan)
↑ ©Anthony Tan(Instagram@anthttm) |
아니나 다를까 출입문을 통과할 때 군인이 담배를 달라는 뉘앙스의 말을 하는 거예요. 돈이나 담배와 같은 일종의 뇌물을 요구하는 군인을 만날 수 있다는 후기를 눈앞에서 경험하게 됐던 거죠. 담배가 없다는 말에 군인이 돈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을 했는데 다행히 그걸로 끝이었어요. 자전거 여행자라 그들에게 돈을 뜯어낼 만한 대상이 아니었나 봐요.”(앤서니)
↑ ©Anthony Tan |
↑ ©Anthony Tan |
도로 위에서 이런 경험이 쌓여갈수록 내 안에 부정은 긍정으로 점차 바뀌어갔어요. 자전거 여행에서 도로 사정이나 기후 조건은 여정을 좌지우지할 만큼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큰 영향력은 경험에서 나옵니다. 일단 앞으로 가야 해요. 멈추지 않고 달려야 하는 이유죠.” (앤서니)
↑ ©Anthony Tan |
“자전거로 파미르를 여행하는 것은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두렵거나 위험하거나 힘들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몸소 알게 되어 기쁠 따름이죠. 자전거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집 근처 인근에서 먼저 시작해보세요. 두 바퀴는 생각보다 빠르고, 두 다리는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거예요.” (앤서니)
↑ ©Anthony Tan |
[글 추효정(여행작가) 사진 추효정, Stuart Ringer, Anthony Tan]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1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