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의 한 획을 그은, 전설적인 작품 ‘쉬리’의 주역들이 차례로 4월 극장가를 찾는다.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청불 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프리즌’ 한석규에 이어 오는 6일에는 김윤진이 신작 ‘시간위의 집’을 통해, 말일에는 최민식이 ‘특별시민’으로 연이어 관객들을 만난다.
배우 김윤진(44)은 이 같은 우연에 대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한결 같이 세련되고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는 “오랜만에 영화를 선보이는 이 순간은 언제나 즐겁고 설렌다”면서도 “극장가 비수기라더니 한석규 선배님이 웬 말이냐. 게다가 최민식 선배님도 기다리고 있어 당황스럽다”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할 줄도 몰랐는데 지금 영화가 너무 잘 되고 있다고 해서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죠. (웃음)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선배님의 좋은 기운을 받아 흥행의 바통 터치를 받고 우리가 시들해질 때쯤 최민식 선배님께 다시 그 바통을 이어 드리면 좋을 것 같아요. ‘쉬리’ 배우들의 훈훈한 흥행 레이스가 완성됐으면 좋겠네요! 하하!”
큼직한 이목구비, 세련된 차림새와 지적인 이미지, 여기에 기막히게 어울리는 쿨한 성격까지. 다만 재치 넘치는 입담은 그녀의 또 다른 숨겨진 매력이다.
극 중 ‘시간위의 집’에서 남편이 죽고 아들이 실종된 뒤 살해 혐의로 25년간 수감생활을 하는 미희 역을 맡은 그는 1992년의 ‘젊은 미희’와 2017년의 ‘늙은 미희’를 동시에 연기하는, 사실상 1인2역을 맡았다.
김윤진은 “아무래도 캐릭터의 전후 상황이 극명하게 다른 데다 작품 전체를 끌어가는 입장이다 보니 부담감이 상당했다.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개인적인 의견을 자유롭게 냈고 캐릭터 표현에 공을 많이 들였다”고 회상했다.
“25년간 수감생활을 하면서 매순간 사라진 아들을 떠올리는, 고통의 시간을 보낸 노인 미희를 연기할 땐 유독 신경 쓸 게 많았고 힘든 감정 상태였어요. 매일을 피 말리는 감정으로 살아와 온갖 분노와 억울함 속에서 지낸 인물이기 때문에 보다 처절하고 연민이 느껴지면서도 고통이 여실하게 느껴지게 표현하고 싶었죠. 전혀 예뻐 보이려는 욕심은 없었어요. 가능한 한 더 처참한 모습으로 보이고 싶었죠.”
그는 40대 나이에도 원톱 주연을 맡을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랍다고 했다. 운이 좋다고도 했다. 세월이 흘러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겸손함이었다.
“제가 신인일 때만 해도 여배우가 30대가 넘으면 주연급으로 활동하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는데 지금은 가능해졌죠. 한 편으로는 우리 세대 여배우들이 유독 독한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하하!”
그는 이어 유독 국내 작에서 엄마 역을 많이 맡은 것에 대해 “그것은 나의 성향과는 별개로 내 나이 대 여배우들에게 피할 수 없는 특혜이자 한계”라고 털어놓았다.
“제 국내작 필모를 보면 유독 엄마 연기를 많이 했지만 미국에서는 오히려 화려하고 섹시한 역할을 많이 맡아서 개인적으로는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아요. 오히려 새롭고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 뿐이죠.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여배우 중심의 작품이 많지 않은 국내 현실은 어쩔 수 없이 답답해요. 쉽게 뛰어 넘을 수 없는 제약들이 많기 때문에 양질의 밀도 높은 작품, 경쟁력 있는 스토리를 만날 행운을 기다려봐야죠. 쉽게 해결된 고민은 아니지만 크고 작은 기회가 올 때마다 최선을 다하면 조금씩 바뀔 거라는 믿음으로 제 길을 가고 있어요.”
새로운 도전에 대한 바람도 드러냈다. 그는 “현실적인 여건만 된다면 새로운 도전, 강렬한 변신도 물론 하고 싶다. 무엇보다 오래도록 연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따뜻하게 웃었다.
“어느덧 세월이 지나 누군가의 아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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