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신한금융지주 이사회에서 연임이 확정된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의 철학이다. 이날 매일경제 기자와 만난 한 회장은 2기 체제를 구상하면서 다시 '기본'을 이야기했다. 너무 진부한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한 회장은 "금융의 본업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이 금융의 힘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길"이라는 점을 면접에서 수차례 강조했다.
한 회장이 생각하는 금융의 본업이란 고객 자산을 선량하게 관리해 가능한 한 최선의 이익을 돌려주는 것이다.
이런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2기 체제에서 리스크는 더욱 철저하게 관리하겠다는 생각이다.
최근 모 건설사가 워크아웃을 다시 신청하며 신한은행은 상당한 손실을 보게 됐다.
이런 일이 재연돼서는 안 된다는 게 한 회장의 강한 소신이다. 매주 수요일마다 신한금융에 리스크가 될 수 있는 요인을 꼼꼼하게 보고받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선제적인 관리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한 회장은 저성장ㆍ저금리 시대를 맞아 금융회사는 '조달'보다는 '운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미래가 달려 있다고 봤다.
외형으로 경쟁하던 시대는 지나갔다는 게 한 회장의 판단이다. 그는 면접 과정에서 "실적과 주가로 평가받는 CEO가 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 회장은 3000억원 적자를 내던 신한생명 대표를 맡아 턴어라운드시킨 경력이 있다.
'투ㆍ융자'라는 용어도 키워드로 내세웠다. 한 회장은 "금융회사가 단순히 '융자'를 해주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기업은 창업 초기부터 '투자'를 하고 인연을 맺고 같이 커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 회장은 "이런 관계가 없으면 금리 0.1%포인트 차이에도 움직이는 고객만 남게 된다"고 강조했다.
'신한 사태'가 초래된 주요 원인으로 체계적인 후계자 양성 부재를 꼽는 지적이 있다. 이런 점을 의식해 한 회장은 "행원부터 회장까지 오른 사람으로서 잘못하면 조직에 누를 끼치게 된다"며 "좋은 후배들에게 승계가 이뤄지도록 후계자 육성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장 선출은 신한사태 후유증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돼 어수선했다는 지적을 의식한 것이다.
인사 원칙에 대해서는 분명한 소신을 내비쳤다.
한 회장은 "철저하게 계열사 CEO에게 임원 인사권을 맡기고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한 회장은 "회장은 계열사 CEO들의 자율적인 인사에 균형감각이 있는지만을 체크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스마트금융 확대 등으로 발생하는 잉여인력에 대해서는 서비스 마케팅 등에 인력을 재배치하겠다는 생각이다.
해외 진출과 관련해 아시아 신흥국 외에 미국 시장에도 무게를 둘 것으로 알려졌다.
한 회장은 "미국 은행들의 소매영업 순이자마진(NIM)은 국내 은행들의 2배인 3.5~4.0%에 이른다"며 "이런 상황에 신경을 쓰겠다"고 말했다.
■ 한 회장 '따뜻한 금융' 멘토는 故한기선 범양상선 회장
"금융ㆍ기업 함께 사는법 배워"
한동우 회장이 젊은 시절 금융인으로 성장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일까.
한 회장은 41년 전 한국신탁은행(후에 서울신탁은행, 서울은행 거쳐 하나은행에 합병)에서 만난 고 한기선 범양상선 회장(1936~2007)을 주저 없이 꼽는다.
한 회장은 1971년 한국신탁은행에 입행하며 금융계에 첫발을 디뎠다. 입행 1년 뒤 한 회장은 부실여신 등을 관리하는 관리부로 발령이 났는데 서울대 법대 선배였던 한기선 관리부 차장을 만났다. 한 회장은 당시 한기선 차장을 여신관리 분야에 탁월한 실력을 갖춘 분으로 인식하고, 직장생활 초기에 자리를 잡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한 회장은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늘 그분이 머릿속에 있었다"고 말했다.
1990년대 후반 한 회장이 신한은행 상무로 일할 때 한 회장은 고인의 신세를 다시 한번 지게 된다. 한 조선사가 범양상선이 발주한 선박을 건조 후 인도하기 직전에 부도가 나서 신한은행이 큰 손실을 보게 될 상황이 닥쳤다. 홍콩 대주단을 찾아다니며 설득하러 다니던 한 회장은 당시 범양상선 회장으로 일하던 고인을 찾아갔다. 범양상선은 아쉬울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계약서상 조선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범양상선은 선박을
하지만 그 경우 은행은 큰 손실을 보게 된다. 고인은 "빨리 영업을 정상화하는 것이 기업과 은행이 함께 사는 길"이라며 선박 3척 값을 제값에 인수해줬다. 한 회장은 "남의 약점을 이용해 이익을 보겠다는 생각이 정도가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주셨다"고 말했다. 한 회장이 강조하는 '따뜻한 금융'은 이런 경험에서 배어났다.
[박용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