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은행 PB센터에서 가족을 포함해 타인 명의로 만들어둔 계좌에서 돈을 인출하는 자산가들이 속출하고 있다. 오는 29일 불법적인 차명거래를 금지하는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개정안, 일명 차명거래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자산가들이 처벌을 두려워한 탓이다.
해외 자산가들이 가족과 함께 입국해 차명 계좌를 정리해 가는가 하면, 수억 원에 달하는 예금을 5만원권으로 인출해 가는 자산가들도 수두룩하다고 은행 PB들이 전했다. 서울 강남권 한 시중은행 PB는 “고액 현금 인출 거래는 금융당국에 자동 신고하게 돼 있어 세무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높음에도 차명 계좌를 정리하기 위해 굳이 뭉칫돈을 인출해 가는 고객들이 있다”고 전했다. 이렇게 인출된 자금들은 환전상이나 귀금속상으로 흘러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PB는 “저금리로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인출된 현금들이 금고에 묻히거나 음성화될까 우려된다”고 전했다.
평소 절세를 목적으로 배우자와 자녀 명의로 현금을 분산 이체해 놓은 중산층 고객들의 문의도 급증하고 있다. 경기도 의왕시에 사는 퇴직자 김 모씨(70)는 “가족 명의로 만든 모든 차명 계좌들이 불법이 되는 건지, 당장 세무서에 가서 증여 신고를 해야 되는 건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 탈세 목적은 형사 처벌
29일 시행되는 차명거래금지법은 불법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차명 금융거래를 금지한다. 불법 차명거래가 적발되면 명의를 빌린 사람과 빌려준 사람 모두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의 형사 처분을 받게 된다.
구체적으로 재산 은닉, 조세 포탈 등 자금세탁행위, 채권자의 강제 추심을 회피하기 위한 행위 등이 해당된다. 예를 들어 60대 남성이 세금우대 금융상품에 가입하고 가입한도 제한을 피하기 위해 타인의 차명 계좌에 자신의 자금을 분산해 넣는 경우는 불법이다. 채권자에게 돈을 갚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 명의 계좌로 본인의 자금을 예금하면 이 역시도 불법 차명거래로 처벌받는다. 불법 도박 자금을 숨기기 위해 차명 계좌에 넣어두는 것도 불법이다. 이 밖에도 증여세나 금융소득종합과세 등을 납부하지 않으려고 차명계좌를 이용하는 경우에도 불법 차명거래에 속해 적발되면 처벌받게 된다.
◆ 친목모임 계좌는 허용
이 같은 불법 목적이 없다면 기존 차명거래는 유지해도 된다. 예컨대 동창회·계·부녀회 등 친목모임 임원을 맡아 회비를 관리하면서 개인 명의로 차명거래하는 것은 합법이다. 또 문중·교회 등 단체의 자산을 관리할 목적으로 단체 대표가 개인계좌로 운용하는 것도 불법이 아니다.
현재 증여세 감면 범위에 해당되는 가족 명의 계좌도 세금 탈루의 목적이 없기 때문에 허용된다. 현행법상 배우자에게는 최대 6억원, 자녀에게는 최대 5000만원(미성년자 2000만원), 기타 친족에게는 최대 500만원까지 증여세가 면제된다. 예를 들어 10억원이 있는 자산가가 아내 이름으로 6억원, 성인인 두 자녀 이름으로 각각 5000만원씩 총 1억원, 부모님 이름으로 각각 3000만원씩 총 6000만원을 예금하고 남은 2억4000만원을 자신 명의의 예금으로 넣는다면 합법이다.
차명거래금지법 시행 후에라도 증여 신고를 하고 가산세를 포함해 세금을 납부했다면 별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타인 명의 계좌가
[배미정 기자 / 김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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