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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장형진 영풍 회장은 지난 20일 임기만료로 대표이사·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영풍은 같은 날 열린 주주총회에서 장 회장의 재선임 건을 안건으로 올리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는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비철금속 분야 세계 선두권 업체인 영풍과 고려아연을 거느린 영풍그룹은 고(故) 장병희 전 명예회장과 고 최기호 전 회장이 1949년 공동설립한 회사다.
창업자들의 2세인 장형진 회장과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이 2대에 걸쳐 동업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영풍은 장 회장 측이, 고려아연은 최 회장 측이 각각 경영을 맡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나이 일흔(만 68세)인 장 회장의 2선 퇴진을 놓고 업계에서는 승계를 위한 포석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장 회장의 장남인 장세준 영풍전자 부사장은 계열사 경영진에 속속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아울러 영풍 지분 17%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기술적인 기업 승계 작업은 어느 정도 마무리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전문경영인인 김명수 부사장과 강영철 전무가 당분간 회사 경영을 맡다가 향후 장 부사장이 경영에 참여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계열사인 고려아연은 한발 앞서 3세 승계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최창근 회장은 2009년 회장직에 오르며 형인 최창걸 명예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넘겨받았는데, 그룹 내부에서는 향후 최 명예회장의 차남인 최윤범 부사장으로 승계가 이뤄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최 부사장은 지난해 초 주총에서 처음 고려아연 사내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오너의 경영일선 퇴진은 영풍그룹만의 일이 아니다. SK그룹 최신원 SKC 회장도 이번 주총을 통해 대표이사와 등기임원에서 물러났다. 고 최종건 SK 창업주의 차남이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촌형인 최신원 회장은 그동안 SKC, SK텔레시스, SK솔믹스, SK코오롱PI의 경영에 참여해왔다.
셀트리온의 창업자인 서정진 회장도 13년 만에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셀트리온은 지난 20일 주총과 이사회를 열고 대표이사를 서정진 회장에서 기우성·김형기 사장으로 변경했다. 서 회장은 앞으로 이사회 의장으로서 중장기 전략 구상과 해외 네트워크 강화에 주력할 예정이다.
기업 오너들의 경영일선 퇴진은 경제민주화 바람이 한창이던 2013년부터 본격화되는 모습을 보여왔다. 담철곤 오리온 회장은 2013년 11월 대표이사·등기이사직을 사임했다. 앞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2013년 3월 대표이사·등기이사 임기가 만료됐지만 재선임 안건으로 본인을 올리지 않는 방식으로 공식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오너들의 잇단 경영일선 퇴진을 두고 업계에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연봉 공개 등 등기임원의 부담을 지지 않으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이들 오너는 사내이사로 등기만 안 돼 있을 뿐 주요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경제민주화 물결 속에서 오너 일가가 등기임원을 회피하려는 기류가 재계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등기이사는 이사회에 참여해 업무 집행의 의사결정, 주총 소집, 중요 자산의 처분과 양도, 대규모 자산의 차입 등 경영상 주요 결정을 내린다. 그에 따른 법적 지위에 맞게 책임도 지게 된다. 일례로 연봉 5억원 이상 보수를 받는 등기임원은 보수를 공개하게 돼 있어 오너들 부담이 큰 상황이다. 하지만 등기임원에서 물러나면 보수를 공개할 필요가 없다.
오너들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는 게 기업에 활기를 불어넣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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