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5월 20일(06:02) '레이더M'에 보도 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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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개미들의 반란'에 하림그룹의 팬오션 인수 시도가 위기에 봉착했다. 다음달 관계인집회에서의 표대결을 앞두고 소액주주들이 팬오션 변경회생계획안의 통과를 저지하고, 궁극적으로 M&A까지 무산시킬 만큼 상당한 우호지분을 확보하면서다.
지난 19일 한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팬오션 소액주주권리찾기카페는 팬오션의 변경회생계획안을 부결시키기 위해 4000만주가 넘는 우호지분을 모았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변경회생계획안에는 지분 가치를 희석시키고 주가를 끌어내려 소액주주에 재산상 손실을 야기하는 '1.25대 1 감자안'이 포함돼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회생안을 최종적으로 결의하는 관계인집회가 다음달 12일 열리는 가운데, 집회에 참석하기 위한 주식 신고는 지난 18일 마감됐다. 관할법인인 서울중앙법원이 마감 이후 현재까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집회 참여를 신고한 주식수는 9000만주를 상회한다.
팬오션 소액주주권리찾기카페는 이 중 4000만주 이상을 우호지분으로 확보했다고 밝혔다. 해당 카페에만 총 981명의 개인이 주식수 2599만주를 위임했고, 법원에 직접 신고한 주식 200만주와 카페측과 연대한 법인들 주식 1200만주까지 합하면 4000만주가 넘는다는 설명이다. 위임받은 주식 2600만주만으로도 팬오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이 보유한 2788만주와 맞먹고, 우호지분까지 고려할 경우 개인들이 산업은행을 제치고 사실상 최대주주에 오르는 셈이다. 산업은행을 제외한 2~3대 주주는 외국계기관으로 보유 주식수가 각각 600만주, 500만주에 불과하다. 산업은행이 이들과 기타 시중은행을 우호세력으로 규합하더라도 개인들이 표대결에서 우위를 점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팬오션 소액주주권리찾기카페의 대표는 19일 매일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소액주주들이 이 정도 규모의 대기업을 두고 최대주주와 전면전을 펼치는 것은 국내에 처음 있는 일"이라며 "팬오션은 자본잠식 상태를 벗어난 상태라 구주주들도 투표권을 가지고, 소액주주 비중이 70%에 달하는 데다 주식수가 9만명에 고루 분산돼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법정관리를 받는 기업들이 대개 자본잠식 상태에서 구주주 투표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 대비되는 상황이다.
그는 "나머지 우호지분은 새마을금고 농협 신협 등 법인으로 가장 보수적으로 잡아도 1200만주에 달한다"며 "푸른저축은행 등 일부 금융기관이 복잡한 결제과정 때문에 위임이 어려워 직접 신고한 경우도 200만주가 넘는다"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파악되지 않은 주주들도 감자에 반대할 가능성이 높아 변경회생계획안 부결은 예정된 수순이라고 내다봤다. 관계인집회에서 변경회생계획안이 통과되려면 참석한 채권자의 3분의 1·주주의 2분의 1 이상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채권자 정족수는 만족시키겠지만 주주로부터 9000만주 절반 이상의 동의를 이끌어내긴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번 1차 관계인집회에서 변경회생계획안이 부결될 경우 하림그룹은 문제가 된 감자안을 삭제한 뒤 2차 수정안을 제출할 수 있다. 소액주주들은 이 역시 부결시켜 하림그룹의 팬오션 인수 자체를 무산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두 차례의 관계인집회에서 변경회생계획안이 모두 통과되지 못하면 법원이 팬오션측 요청에 따라 강제인가해야만 인수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
카페 대표는 "법원이 권한은 가졌지만 자본잠식이 아닌 법인에 대해 변경회생계획안을 강제인가한 사례는 한 번도 없다"며 "자본도 살아있고 영업이익도 연간 2000억원이 넘는데 법원이 주주들이 반대하는 회생안을 강제인가할 명분도 없다"고 말했다.
다만 법원측은 자본잠식 여부가 강제인가를 결정하는 척도가 아니라며 법률적 요건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원 관계자는 "관계인집회를 마친 뒤 재판부가 판단할 사안"이라며 "과거에 자본잠식이 아닌 법인의 회생안을 강제인가한 경우가 없었다고 해서 이번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팬오션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조6453억원, 2158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흑자로 돌아선 것이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도 589억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18.6%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 매출액은 3878억원으로 10.8% 늘었다.
[김윤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