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6월 23일(06:02) '레이더M'에 보도 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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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놓고 대립 중인 삼성그룹 대주주와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저마다 주주 이익을 옹호한다는 명분을 제시하고 있어 주목 된다.
먼저 합병안에 반기를 든 엘리엇은 "합병비율이 일방적으로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이 1:0.35로 정해졌는데 실질적인 기업가치를 감안하면 1:1.6이 맞다는 것이다. 엘리엇 측은 "삼성그룹 대주주가 경영권 승계를 위해 소액주주의 이익을 희생시키고 있다"며 주주이익을 위해 사용하고 있지 않은 계열사 지분 등을 주주에게 현물배당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삼성그룹 대주주는 '주주 이익을 높이기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추진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삼성물산 측은 "지난 수년간의 건설 경기 침체와 업황 회복에 대한 부정적 시각 때문에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보다 낮다"며 "합병을 통해 사업 시너지를 내고 효율을 제고해 회사 가치를 높이는 것이 주주들을 위해 더 바람직한 것이라고 판단해 합병을 결정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 일반주주 입장에서는 어느 편을 드는 것이 유리할까. 삼성그룹은 유사한 계열사 합병 경력을, 엘리엇은 유사한 경영 참여 경력을 가지고 있다. 각자의 요구가 관철됐을 때 해당 기업의 주가가 어떤 움직임을 보였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3월 삼성SDI는 옛 제일모직을 흡수합병 했다.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SDI와 소재를 생산하는 옛 제일모직이 합병한다면 전자부문 수직계열화가 완성되면서 글로벌 소재·에너지 토탈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청사진을 내세워 주주들을 설득했다.
당시 삼성 측의 청사진을 믿고 주식을 샀던 투자자들은 현재 마이너스 32%의 수익률을 내고 있다. 합병 당시 17만6000원이었던 삼성SDI 주가가 19일 종가 기준으로 11만9500원까지 추락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합병 무산이 주주에게 반드시 유리한 것은 아니다. 지난해 주식매수청구권이 과다 청구되면서 결국 합병이 무산된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의 주가는 합병결의 당시와 비교했을 때 50% 가깝게 하락한 상황이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무산될 경우 삼성물산 주가가 삼성엔지니어링 또는 삼성중공업처럼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합병 무산 후 엘리엇이 본격적으로 삼성물산 경영에 참여하면서 주주환원정책 강화에 나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일반주주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주가가 움직여줄지는 미지수다. 엘리엇은 지난 2013년 1월 미국 석유회사인 헤스를 공격하기 시작해 결국 창업자의 아들을 몰아내고 사업부 분사 및 매각에 나서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19일 미국 뉴욕거래소에서 헤스의 주가는 68.64달러로 2013년 1월 주가(68.21달러)와 큰 차이가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7월 미국 IT업체인 EMC에 대해서도 엘리엇은 지분 2%를 매입한 뒤 경영진을 압박하기 시작했지만 미국 나스닥 시장에서 EMC 주가는 30달러에서 27달러로 오히려 내려갔다.
소액주주들 입장에선 섣불리 어느 한쪽 편을 들기보다는 각자도생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는 얘기다. 22일 '삼성물산 소액주주 연대'가 엘리엇에 주권을 위임하는 대신 자체적으로 회원들의 주권을 위임받아 합병에 반대표를 던지기로 의견을 모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용환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