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주식예탁증서(DR)를 해외 증시에 상장시켰던 삼성물산이 최근 DR를 상장폐지 하기로 결정했다. 다음달 17일 열릴 임시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되면 국내 합병절차 및 일정에 맞춰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된 DR를 상장폐지할 예정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해외 증시에서 DR를 상장시키는 절차가 매우 까다로운데 반해 자본조달 이점이나 대외신인도 제고 효과가 예전만 못해 차라리 상장폐지가 낫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서 삼성물산이 소멸법인이고 제일모직 DR가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지 않기 때문에 DR 상장을 유지하려면 일단 삼성물산 DR를 상장폐지한 후 제일모직 DR로 재상장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그럴만한 실익이 적다고 판단한 것이다.
DR를 상장유지할 실익이 없다고 보는 기업은 삼성물산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해외 상장 DR 종목 수는 2011년 말 45개였지만 현재 42개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문진혁 한국예탁결제원 글로벌금융팀장은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해외주식 직접투자가 가능해지자 투자자 입장에서 굳이 DR에 투자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DR 발행량 범위 내에서 주주의 요구에 따라 DR과 국내 주식(원주)은 서로 자유롭게 교환될 수 있다. 원주와 DR의 교환비율은 사전에 정해져 있다. DR 가격이 국내 증시에서 형성되는 가격에 연동된다는 의미다.
현재 삼성물산 주식 중 DR 형태로 거래되는 주식 수는 28만주다. DR 상장 당시 발행된 주식수는 총 143만주였지만 이 중 115만주는 국내 주식으로 전환돼 한국거래소에서 거래되고 있다.
일부 DR는 모두 국내 주식으로 전환돼 해외 증시에서는 거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 KCC, 코웨이, 판타지오, 한화케미칼 보통주와 대신증권 2우선주, 에쓰오일 우선주가 대표적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 이뤄지는 DR 거래량보다 국내에서 이뤄지는 원주 거래량이 훨씬 많다보니 투자자들이 좀 더 유동성 높은 시장에서 거래하고자 DR를 원주로 바꾸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전체 전환 현황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2013년부터 올해 5월까지 총 1억8798만주가 DR에서 원주로 전환됐다. 같은 기간 원주에서 DR로 전환된 주식 수는 4739만주에 불과했다. 문진혁 팀장은 “2013년 두산인프라코어·코라오홀딩스·영원무역, 2014년 기업은행·한화케미칼이 신규로 해외 증시에 DR를 상장시켰다”며 “상장 직후 대부분의 DR가 원주로 전환되다보니 이 기간 동안 DR에서 원주로 전환된 주식수가 많았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이 처음부터 원주에 투자하지 않고 DR에 투자한 뒤 전환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DR 발행 때 당시 주가 수준보다 할인된 가격으로 공모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곧바로 원주에 투자하는 것보다 DR에 투자한 뒤 원주로 전환하면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 최근 투자자들 사이에서 공모주 투자 열풍이 불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기업 입장에서도 DR를 상장 유지할 실익은 별로 없지만 신규 상장시킬 메리트는 있다. DR를 발행하면 국내에서 유상증자하는 것보다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적기 때문에 기존 주주들의 반발이 적은 편이
[용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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