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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013년 상반기 골드만삭스가 국내 판매한 1MDB(1 Malaysia Development Berhad) 채권 가격이 최근 투자 원금 대비 20% 이상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채권 액면가(100) 대비 매수 호가는 79, 매도 호가는 81에서 형성돼 있으나 실거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학연금 교직원공제회 교보생명을 비롯한 국내 10여 개 금융회사들은 2013년 4월부터 6월까지 총 5억4000만달러(약 6400억원) 규모 1MDB 채권을 매수했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시가 평가 시스템상으로는 원금 대비 채권 가격이 20% 정도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지만 그 가격에 팔려고 해도 살 사람이 없어 거래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표면적으로 1300억원가량 손실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금리상으로도 이 채권은 원금 회수가 불확실한 정크본드에 진입했다.
1MDB 채권은 골드만삭스 불법 판매 논란으로도 한 차례 이슈가 된 바 있다. 골드만삭스는 이 채권을 국내 기관투자가들에 판매하는 과정에서 국내 인가를 받은 서울지점을 통하지 않고 홍콩지점이 직접 영업했다는 혐의로 지난해 금융당국의 징계를 받았다. 다만 투자자들에 대한 불완전판매 혐의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1MDB는 2009년 설립된 말레이시아 국영 투자회사로 국내외 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발전소 건설이나 부동산개발사업 등에 투자해 수익을 얻는 구조다. 그러나 수년간 불투명한 자금 집행과 부실 경영이 지속되면서 수익성이 악화됐고 부채 규모는 110억달러(약 13조원)까지 늘어났다. 이 채권에 투자한 한 기관투자가는 "1MDB 자체는 취약하지만 말레이시아 정부의 자금 지원 가능성을 믿고 투자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 비자금 스캔들이 터지면서 정부 지원이 실제 이뤄질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높아졌다. 지난 7월 말레이시아 검찰 등이 1MDB 부실 원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7억달러 자금이 나집 라작 총리 개인 계좌로 흘러들어갔다는 혐의가 제기되면서 나집 라작 총리와 1MDB 모두 입지를 위협받고 있다.
이에 따라 1MDB 채권이 정크본드로 전락한 가운데 기관투자가 중 상당수는 로스컷(손절매) 구간에 걸려 고민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연기금과 보험사는 자금 운용 리스크를 통제하기 위해 자산 가격이 일정 기준 이하로 떨어지면 자동으로 손절매하는 로스컷 규정을 갖고 있다.
김형호 채권투자자문 대표는 "국내 채권에 비춰볼 때 원금 대비 채권 가격이 20~30% 하락하면 기업 유동성 위기나 워크아웃, 50% 이상 떨어지면 법정관리 신청 정도의 신용 리스크가 발생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투자한 지 2년 만에 평가손실이 급증하자 일부 국내 보험사들은 채권을 판매했던 골드만삭스 홍콩지점 측에 채권을 되사줄 수 있는지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투자 손실을 계기로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리스크 관리를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기관투자가는 "2013년 당시에도 말레이시아 내외부에서 1MDB의 경영부실과 재무구조 악화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며 "채권 발행 절차 불투명성과 유사시 말레이시아 정부의 실질적 지원이 이뤄질 것인가를 두고도 논란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기관들이 높은 금리 뒤에 숨겨진 리스크를 간과한 채 성급하게 투자를 결정한 면도 없지 않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당시 삼성생명 한화생명 등 일부 보험사들은 이런 리스크를 감안해 투자를 하지 않았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1MDB 채권을 대규모로 매입한 이유는 이 채권이 상대적으로 많은 이자를 지급했기 때문이다. 10년 만기 구조에 표면금리 4.4% 수준으로 같은 신용등급 채권에 비해 금리가 1%포인트 이상 높았다. 국내 기관들은 당시 1MDB가 발행한 채권 총량의 20%를 인수했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높은 금리는커녕 원금 회수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일각에선 높은 수수료를 노린 외국계 금융사의 공격적 마케팅에 국내 기관들이 희생양이 된 것 아니냐는 추측도 흘러나온다.
골드만삭스는 채권 총액인수 대가로 전체 발행금액의 9%를 수수료로 받았다. 국내 증권사들이 10년 만기 채권 발행으로 얻을 수 있는 수수료는 채권 발행금액의 0.2~0.3% 수준에 불과하다.
[김혜순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