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박 모씨(40)는 매달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액으로 150만원을 은행에 낸다. 월급은 500만원으로 같은 연차에 비해서 적은 편은 아니지만 육아비용(200만원)과 부모부양비(50만원), 생활비(200만원) 등을 제외하면 남는 것이 없다. 당장은 버티지만 은퇴 후는 더 걱정이다. 남들은 소득이 단절 이후에도 생활자금을 쓸 수 있도록 재테크도 한다지만 박씨는 생각도 못하고 있다. 박씨는 “결혼 초 냈던 대출을 지금까지 갚고 있는데 한번 대출을 갚기 시작하니 돈 모으기가 어렵더라”며 “금수저를 물고 나온 사람들은 자산증식을 잘만하는데 간혹 한탄스러울 때도 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에서 직장인으로 살기는 참 팍팍하다. 20대에 직장을 구해도 30대 결혼과 내집마련, 40·50대 자녀교육, 60대 자녀결혼과 자신의 노후까지 책임지려면 ‘돈버는 기계’처럼 살게된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자산을 기준으로 ‘수저 계급론’이 세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도 이런 현실 때문이다.
동일한 선상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더라도 흙수저와 금수저는 차이가 난다. 이유는 빚 때문이다. 사회초년생 때 빚을 낸 이들은 10~20년 간 대출을 갚으면서 자산 증식의 기회를 놓친다. 이 때문에 소득이 줄어들거나 끊기는 60대에 돌아오는 성적표는 초라하다.
매일경제신문이 10일 코리아크레딧뷰로(KCB)의 도움을 받아 대한민국 가계신용리포트를 작성한 결과 드러난 실상이다. 이는 우리나라 국민 중 신용등급을 메길수 있는 4300만명 가운데 중위신용자(5등급) 661만명의 신용정보를 분석한 결과다. 이 분석에는 소득이 없거나 신용등급 변화에 변수가 많은 데이터를 제외한 ‘유효 데이터’만 사용했다.
우선 40·50대 중장년층의 빚부담이 상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40대의 월평균 대출 원리금 상환액은 78만8600원에 달했다. 이같은 액수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평균 근로자의 월급여 271만8000원의 29%에 해당한다. 40대들은 매달 빚 갚는데 월급 3분의 1 가까이를 쓴다는 얘기다.
40대는 30대에 받은 주택관련 대출을 갚아나가면서 급한 자금이 필요한 경우에는 신규대출을 통해 생활을 꾸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0대의 대출경과 일수는 평균 151일로 대출을 일으킨지 평균 1년이 안된다. 평균 대출경과 일수가 짧을 수록 신규대출을 많이 받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주로 목돈 마련을 위해 대출하는 30대의 평균 대출경과 일수인 123일과 크게 차이없는 수치여서 40대도 신규대출이 많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자녀가 성장하면서 집을 옮기거나 내집 마련을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신규로 받았다는 얘기다.
50대의 경우에는 대출 월 상환액이 다소 줄어든다. 이들의 월대출상환액은 66만1700원으로 월급 249만원의 26.5%에 해당한다. 하지만 대출 개설 후 경과 일수는 168일로 여전히 신규대출을 많이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주택자금을 위해 대출 외에 자녀교육을 위한 학자금 대출 등 단기 대출이 많다는 의미다. 또 부모의 건강이나 경조사 등을 챙기다 보니 생활자금이 부족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손상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소득대비 빚상환 부담을 의미하는 지표인 총부채상환비율(DTI)이 30%이면 생활이 힘들고, 40%가 넘으면 일상적인 생활이 안 된다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40~50대의 월대출 상환액 비중이 30%에 육박하고 있다는 것은 평생소비 없이 근근이 빚만 갚으며 살고 있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60대의 월소득 대비 대출상환액 비중은 51.6%에 달한다. 60대는 월 대출 상환액이 89만7100원으로 전 세대에 걸쳐 가장 많은 연령대이기도 하다. 소득단절로 인한 생활비 부족과 기존 빚 상환으로 고역을 겪고 있는 셈이다.
이상빈 한양대 교수는 “노년층은 일반적으로 생활비가 줄어드는데 매달 갚은 대출금이 많아진다는 것은 대부분의 중신용자들의 노후 대비가 전혀 안돼있다는 의미”라며 “소득이 크게 줄어들다보니 생활비 부족으로 빚을 내는 셈”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중장년층의 빚 고리는 30대부터 시작됐다. 20대에는 적었던 빚 부담이 30대에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20대의 경우 평균적으로 매달 10만4000원을 빚 갚는데 썼다. 하지만 30대가 되면 빚이 눈덩이 처럼 불어난다. 30대의 월평균 대출상환액은 59만6000원이다. 빚부담이 6배 늘어난다는 얘기다.
30대도 빚부담에 시달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평균 월급여가 253만7000원으로 대출 상환액이 한달 월급의 23.5%에 달했기 때문이다. 30대 빚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주택 마련과 결혼 등에 ‘목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특히 결혼 비용이 주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올해 4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이에 비해 사회초년병인 20대는 상대적으로 빚 부담이 적었다. 이들의 대출 상환액은 매달 10만4000원에 불과했다. 학자금 대출이나 전·월세 자금 등이 대출의 쓰임으로 분석된다. 특히 이들의 평균 월급여 170만원의 6%에 불과한 수준이다. 어느 정도 빚갚을 여력은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효성 기자 / 박윤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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