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금융계에 상품혁신 바람이 불고 있다. 혁신을 이끌고 있는 주인공은 지난달 30일부터 시작된 계좌이동제다. ‘집토키’를 지키고 ‘산또끼’를 확보하기 위해 은행들은 예전에는 볼 수 없던 상품을 속속 출시하고 나선 것이다.
또 다른 주인공은 보험산업 규제완화 물결이다. 금융당국은 보험산업 규제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금융위원회가 보험산업에 대한 빗장을 푸는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가이드라인’이 사라지면서 보험사들은 경쟁사들과 치열한 경쟁을 펼칠 수 밖에 없게 됐다.
직장인 김씨(36)는 주거래 은행 이동을 고민하고 있다. 월급통장과 카드결제계좌가 달라 매번 자금이체를 하던 불편함을 겪었지만 지난달 30일 ‘계좌이동제’가 본격 시행되면서 ‘페이인포(Payinfo)’를 통해 계좌이동이 한결 간편해 졌기 때문이다.
‘계좌이동제’로 인해 금융소비자들은 손쉽게 주거래 은행을 변경할 수 있게 됐다. 동시에 금융권에서는 기존 고객을 지키면서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계좌이동제란 고객이 자동이체 출금계좌를 다른 은행의 계좌로 변경하고자 할 때, 기존 계좌에 연결돼 있던 여러 건의 자동이체 항목을 새로운 계좌로 간편하게 옮겨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금융소비자가 주거래 계좌 변경을 위해 요금 청구 기관별로 기존 자동이체 출금계좌를 일일이 해지하고 새로 등록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크다는 지적에 따라 마련됐다.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우리은행을 비롯한 대형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등 모두 16개 은행이 참여한다. 현재 시행되는 서비스는 페이인포 사이트를 통해서만 이뤄지며, 내년 2월부터는 은행 각 지점과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변경이 가능하다.
금융권에서는 계좌이동제 시행으로 업계가 큰 격변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자동이체 건수는 26억1000만건에 금액은 799조8000억원에 이른다. 약 800조원대에 이르는 거대 시장을 놓고 은행권의 고객 지키기와 유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금융권은 이번 계좌이동제 시행에 따라 주거래 은행 선택권이 대폭 확대되는 등 소비자 편익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개인별 상황에 따라 필요한 금융 서비스를 가장 좋은 조건으로 이용할 수 있게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어서다. 또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차별화된 상품과 서비스 개발 등 은행 간 경쟁이 촉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은행산업 전체의 발전을 끌어낼 수 있는 혁신적인 상품과 전략이 나올 수 있다.
최근 은행권에서는 이같은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예전에는 주거래고객 본인에 한해 제공되던 수수료면제, 예·적금 추가금리 등의 혜택이 배우자와 자녀에게도 제공되는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멤버십서비스 역시 은행뿐 아니라 계열사에서 제공하는 포인트를 통합해 현금처럼 사용하는 제도가 도입되고 있다.
우리은행은 리테일(소매) 고객 확보에 초점을 맞췄다. 현재 추진중인 민영화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리테일 고객기반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우리은행은 다음달 31일까지 ‘첫거래 고객’을 대상으로 한 행사도 진행한다. 입출식통장과 체크(또는 신용)카드를 발급한 고객은 사은품과 함께 3개월간 수수료 무제한 면제와 신용대출 금리우대와 환율우대 혜택을 선보이고 있다.
KEB하나은행은 사업자를 공략하고 나섰다. 하나은행은 개인사업자를 위한 ‘사업자 주거래 우대통장’을 내놨다. ‘사업자 주거래 우대통장’은 그동안 분산돼 있던 각종 우대 혜택을 한꺼번에 모아 수수료 면제 혜택을 확대하고 면제 대상 요건도 완화시킨 개인사업자 전용 통장이다. 신용카드 가맹점주 등 개인 사업자는 인터넷뱅킹 타행이체 거래 등 대부분의 은행거래 수수료를 면제 받을 수 있다.
신한은행은 기존 상품을 강화하는 한편 주거래 고객 전용 상품인 ‘신한 주거래 온(溫)패키지’를 통해 고객몰이에 나서고 있다. 온 패키지는 기존의 주거래 우대 패키지에 생활비 대출, 주거래 카드 등의 금융혜택을 더한 것으로 모든 가족이 공유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게다가 다음 달 8일까지 자동차를 경품으로 내건 이벤트를 마련했다.
DGB대구은행은 계좌이동제 특화 상품인 ‘DGB주거래우대통장 예금·적금’을 판매하고 있다. 이는 주거래계좌 지정시 다른 통장과 연계된 각종 자동이체 납부 계좌가 한꺼번에 이동하는 방식이다. 이밖에 KB국민은행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계좌이동제 서비스를 안내하고 있으며, 시장 상황을 지켜본 후 대응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NH농협은행은 계좌이동제에 대비해 출시한 패키지 ‘3종 주거래상품’에 대한 이벤트를 이달 말까지 진행하고 있다. 가입 고객에게는 1회용 비밀번호생성기나 NH안심보안카드를 무료로 제공한다. 또 주거래 우대통장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추첨을 거쳐 경품 스마트폰과 목우촌선물세트도 준다. SC은행도 신규 자동이체 고객에게 갤럭시 기어 S2와 영화예매권 등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이달 30일까지 진행한다.
계좌이동을 하기 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존 주거래 은행에서 우대금리를 적용받아 대출을 받은 경우에는 주거래 은행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중은행의 금리조건은 급여 이체나 신용카드 실적, 예·적금 가입여부가 근거가 되기 때문에 타 은행으로 계좌이동을 하면 대출 금리는 자연스럽게 올라가게 된다.
또 이체 수수료를 면제받았다면 이체수수료도 생기고,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계좌를 이동하게 되면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 은행들이 내놓는 특화상품에 솔깃해 섣불리 계좌를 이동하기보다는 자산 포트폴리오를 고려해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계좌이동제와 더불어 금융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고 있는 것은 보험산업 규제완화 움직임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최근 금융경영인 조찬 강연회에서 “23년 만에 보험 규제를 다 들어낸다. 그동안 보험사들은 규제의 틀 안에서 편안하게 ‘붕어빵 상품’으로 경쟁했던 측면이 있는데 이제는 다 알아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여기에 한술 더 떠 규제 완화 시점을 당초 계획보다 앞당기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단계적으로 규제를 풀어 상품 개발과 가격 결정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이 이번 보험산업 규제완화의 골자다. 지금까지 보험사들은 새 상품을 내놓을 때 금융감독원에 사전 인가를 받아야 해 조건도 까다롭고 인가 기간도 길다는 지적이 많았다.
금융위는 상품개발에 있어 사전신고제를 사후신고제로 전환하고 표준약관을 폐지하는 등 전면적인 보험규제 혁신에 나섰다. 온라인 슈퍼마켓을 통한 보험사별 경쟁 강화, 자산운용 규제 완화, 후순위채 발행 등 다양한 자본 조달 방식 허용 등도 포함됐다.
금융감독원도 보험규제 개혁에 발맞추고 나섰다. 보험상품에 대한 가격 측정에 일정 개입하지 않고 만약 개입하게 되면 해당 직원에 대한 인사 조처를 가하기로 했다. 다만 금감원은 보험사들의 사후 규제는 더욱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당국의 규제완화에 따라 개별 보험사들이 얼마나 경쟁력 있는 상품을 내놓고 손해율 개선을 이뤄 수익을 올릴 수 있는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보험사들은 규제에 묶여왔던 상품 개발을 촉진해 경쟁력 있는 상품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소형 손보사들은 손해율이 90%를 넘어서는 자동차보험의 경우 보험료 인상에 나서는 등 서둘러 대응하기 시작했다.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로 인해 보험사별 경쟁력 차이는 확연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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