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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21일 대우증권 인수가 유력해지자 이 같은 포부를 밝혔다. 박 회장은 자금력에서 앞서는 KB가 유력할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을 깨고 보란 듯이 본입찰에 최고액을 베팅하며, 대우증권 인수의 9분 능선을 넘었다. "박 회장이 오너 기업인 특유의 결단력을 발휘할 경우 승부를 예측하기 쉽지 않다"던 경쟁사들의 우려가 현실이 됐다.
미래에셋증권의 대우증권 인수전 승리를 시장에서는 '기업가정신의 승리'라고 표현한다. 박 회장은 오래전부터 '아시아 대표 투자은행'이라는 명확한 비전을 갖고 있었다. 아시아 금융산업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만큼 아시아 대형 투자은행으로의 변모를 통해 글로벌 투자은행들과 경쟁할 수 있는 자본력을 갖추고, 본격적으로 아시아 시장을 선도해 나가겠다는 것. 자신감도 충만했다. 대우증권 인수전을 앞두고도 "글로벌 IB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경험과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는 만큼 가장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것은 우리"라며 자신감을 표명했다는 후문이다.
박 회장은 증권업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1997년 7월 자본금 100억원 규모의 미래에셋캐피탈을 설립한 이래 특유의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한국 금융사에서 유례없는 성공 신화를 써 왔다. 그에게는 늘 '최초' '최고'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1997년 미래에셋을 창업한 박 회장은 외환위기의 어려움 속에서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설립하고,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 '박현주 1호'를 선보여 대성공을 거뒀다. 당시 미래에셋 뮤추얼펀드들의 평균 수익률은 90%를 넘었고 이에 따라 투자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면서 '박현주 신화'가 시작됐다. 미래에셋은 뮤추얼펀드의 성공에 이어 국내 최초의 부동산펀드 등을 내놓으며 한국 금융 역사를 새로 쓰기 시작했다. 박 회장은 이 같은 성공을 바탕으로 1999년 미래에셋증권을 설립하고 2005년 미래에셋생명을 출범시켰다.
미래에셋은 해외 진출에서도 국내 최초 기록을 갖고 있다. 2003년 자산운용업계 최초의 해외법인인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을 출범시키며 본격적인 해외 진출을 알렸다. 2005년에는 국내
[노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