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진행을 하기 위해 설계계약서를 작성하다 보면 금액을 대하는 모습도 여러 가지다. 계약 금액을 낮춰달라고 하거나 계약 시 지급 금액을 적게 해달라고 하거나 준공 후 드리면 안 되겠냐는 이야기까지, 제시한 금액을 한 번에 흔쾌히 승낙을 받은 예는 거의 없다. 그래도 계약에 앞서 금액의 적정성에 대해 협상하는 것이니 어느 협상이나 밀고 당기는 과정이야 당연한 것들이다.
하지만 계약과 상관없이 약속된 지급일을 미루는 경우도 허다하다. 허가도서 작성이 완료되어 관청에 허가 들어갈 때 지급하기로 되어 있던 지급이 은행 대출과 돈이 없다는 이유로 미뤄지기 다반사고 건물에 대한 사용승인 전에 지급하기로 되어 있던 비용도 분양이 안 되었거나 예상치 못한 세금으로 자금 결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지급일을 미루는 일들이 많다.
건축에서는 선한 건축주와 선한 시공사, 나쁜 건축주와 나쁜 시공사로 설명되어지는 건축 현장의 물고 물리는 관계가 있다. 건축을 시작하는 건축주나 시공사가 언제나 선한 상태로 시작하지만 결과는 늘 나쁜 상태로 귀결된다는 이야기다.
선한 건축주는 시공사에게 공사를 믿고 맡기고 선한 시공사는 제한된 공사비 안에서 건축주의 요구사항을 반영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반대로 나쁜 건축주는 시공사를 절대 믿지 않고 조그만한 것도 하자로 보아 재시공해줄 것을 요구하고, 나쁜 시공사는 수주를 목적으로 어떻게든 저렴한 금액으로 계약한 후 공사변경과 설계변경 등으로 공사비를 증액하거나 설계의도에 못 미치는 저렴한 재료로 시공하거나 부실한 약식공사로 시공하여 이익을 챙겨간다.
선한 건축주가 선한 시공사를 만나서 아무런 문제없이 건축이 마무리 되면 좋겠지만 건축주가 선한 시공사를 만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다 보니 건축주와 만나게 된 시공사는 대부분 회사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회사와 처음 거래하는 선한 건축주는 시공사 이익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어려움을 풀어주는 것에 더 많이 고려해줄 것이라 생각하고 계약한다. 그러나 그렇게 건축주를 먼저 생각해주는 시공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게 회사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시공사를 만나본 선한 건축주는 어느덧 시공사를 믿지 않는 나쁜 건축주가 되어 시공사를 제어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계약방식이며 하자며 소송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다툼을 준비한다.
물론 반대로 선한 시공사도 선한 건축주를 만나서 아무런 문제없이 건축이 마무리 되면 좋겠지만 시공을 업으로 삼고 다양한 건축주들을 만나다 보면 공사를 두 번 이상 한 건축주를 만나게 된다. 앞서의 이야기처럼 시공사에게 힘들어 본 경험이 있는 건축주는 나쁜 건축주가 되어 손해를 줄이고자 하는 선한 시공사에게 발견하기도 힘든 부분을 찾아서 하자이니 공사를 해달라고 할 뿐만 아니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하자에 대해서도 하자치유를 이유로 남은 공사비를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들이 생긴다.
건축현장에서 누가 더 선하고 누가 더 나쁜지는 중요하지 않다. 건축주라는 개인과 시공사라는 회사가 가지는 언어가 다를 뿐이기 때문이다. 회사는 기본적으로 계약과 서류가 중요하지만 개인은 신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건축주는 일회성이라면 시공사는 계속된 전문화된 직업군이기 때문이다. 다른 언어의 두 대상이 한자리에서 대화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처음 건축하는 건축주가 시공사의 언어를 이해하기 쉽지 않고, 전문화된 시공사가 건축에 대한 지식이 없는 개인에게 전문화된 언어를 이해시키기도 쉽지 않다.
시공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건축사에게 언어의 설명을 위해 중간 매개를 부탁하거나 자신과 신뢰관계에 있는 누군가에게 중간 역할을 부탁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흔히들 CM이나 PM등
건축주와 시공사가 서로를 이해 못해서 공사비를 가지고 밀고 당기는 것으로 승리감을 가질게 아니라 이해 가능한 언어로 서로 간에 믿고 건축한다면 공사비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는 일은 현저히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라임건축 김법구 건축사][ⓒ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