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샷법은 지주회사 전환을 촉진하고, 인수·합병(M&A)을 통한 사업 재구축을 촉진하는 것이 핵심이다. 비주력 사업 매각 등 구조조정도 한결 손쉽게 하자는 취지였다. 이 때문에 애초 증시에선 대기업 지주사들과 삼성물산·현대글로비스 등 지배구조 관련주들을 원샷법 수혜주로 꼽았다.
하지만 4일 국회에서 원샷법이 사실상 반 토막 난 채 통과되자 시장 반응은 미지근한 모습이다. 5일 유가증권시장에서 SK(1.07%)와 한화(0.83%) 등 일부 종목만 소폭 상승했다. 삼성물산(-0.65%)과 현대글로비스(-1.22%)를 비롯해 LG(-2.71%) GS(-1.7%) CJ(-7.05%) 등은 오히려 주가가 떨어졌다.
시장 반응이 이처럼 기대 이하인 것은 정치권이 대기업 특혜론을 의식해 지원 대상과 방법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제한했기 때문이라고 증시 전문가들은 해석한다. 대표적인 것이 소규모 합병 규제 완화 방안이다.
현행법상 주주총회 특별결의가 필요하지 않은 소규모 합병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합병 대가로 발행하는 신주가 전체 주식 중 10%를 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원샷법은 신주가 20%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도 소규모 합병을 인정한다. 이에 따라 합병을 추진하는 기업들은 운신 폭이 넓어지게 된다. 예를 들어 현재 16조원인 삼성SDS 시가총액이 2배 이상으로 불어나더라도 삼성전자(우선주 포함 시가총액 190조원)와 소규모 합병이 가능해진다.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이 삼성SDS를 활용해 삼성전자 지배력을 강화하기가 한결 용이해지는 셈이다.
하지만 실제 국회를 통과한 원샷법은 합병신주 요건 완화가 경영권 승계 등에 활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제도 강화했다. 소규모 합병을 막을 수 있는 반대 주식 비율을 20%에서 10%로 낮춘 것이다. 종전에는 삼성전자 주주 20%가 모여야 삼성SDS와 소규모 합병을 막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10%만 모아도 가능해진다. 현재 삼성전자 외국인 지분율이 50%에 육박하므로 소규모 합병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시장에선 보고 있다.
물론 각종 제한에도 불구하고 규제 완화라는 측면에서 중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우선 합병, 분할, 자산 양수도 요건이 완화되면서 과잉공급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건설이나 중공업 등 최근 업황 부진을 겪고 있는 자회사로 인해 실적이 나빠진 지주사들이 자회사 구조조정을 통해 실적을 개선할 수 있게 됐다. 한화건설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한화나 플랜트 사업부가 있는 삼성물산이 대표적인 예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원샷법은 과잉공급 업종에 대한 사업구조 개편이 목적"이라며 "건설사업 부진 때문에 실적이 나빠졌던 한화나 삼성물산, 한라홀딩스(한라건설이 자회사)가 원샷법 수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과잉공급 업종 중 하나인 화학업종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삼양홀딩스도 원샷법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정부가 정한 구조조정 대상 업종인 TPA를 생산하는 삼남석유화학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삼양홀딩스도 원샷법으로 자회사로 인한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도 원샷법으로 인해 더 적극적인 성장 기회를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원샷법에 명시된 '지주회사의 손자회사 규제에 관한 특례'를 적용하면 사업 시너지를 위한 M&A가 한결 용이해진다.
지주사인 SK는 원샷법이 허용하는 손자회사 공동 출자로 인한 혜택이 기대된다. 원샷법은 자회사들이 자금을 모아 손자회사에 공동 출자하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에 자금 부족으로 M&A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사례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자금 부담으로 그동안
중복 사업이 많은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비상장)도 원샷법 수혜 대상이다. 현대엠코를 합병하는 현대엔지니어링은 화공플랜트 외에 주택사업까지 하고 있어 현대건설과 자산 양수도를 위해 중복사업을 정리할 수 있는 여지가 높다.
[노현 기자 / 김제림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