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키움증권이 촉발했던 홈트레이딩시스템(HTS) 수수료 인하전이 이제는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으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소비자들이야 당장은 '공짜'여서 좋지만 증권업계는 '제 살 깎아먹기'로 인한 수익 생태계 유지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가 비대면 계좌를 개설한 고객에 대해 3~5년간 MTS 주식 거래 수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3월 초 비대면 계좌 개설 서비스를 시작하는 현대증권도 비대면 계좌를 계설한 신규 고객에 대해 5년간 수수료를 면제하기로 했다. 오프라인 거래 시 0.5%(100만원 기준), HTS나 MTS 거래 때는 0.1~0.15%가량을 거두던 수수료를 포기한 것이다.
지난 18일 삼성증권이 비대면 계좌 서비스 발표 때 모바일 거래 고객에게 수수료를 선제적으로 면제하면서 다른 증권사들도 어쩔 수 없이 수수료를 낮춰야 하는 상황이 됐다. A증권사 관계자는 "한 곳이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면 다른 곳은 따라가야 현상 유지라도 할 수 있다.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선 브로커리지 수수료 손해는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증권사 지점을 방문하지 않고도 계좌를 만들 수 있는 비대면 계좌의 속성상 수수료 인하 압력은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과거엔 지점에 직접 가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한 증권사 계좌를 계속 썼다면 이젠 간단한 본인 인증으로 10분 만에 집에서도 계좌를 만들 수 있다. 계좌 개설 절차나 보안성은 증권사마다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고객들은 가장 낮은 수수료를 제시하는 곳에 몰릴 수밖에 없다. 특히 신규 고객에게만 무료 혜택이 가기 때문에 이미 증권계좌가 있는 고객들도 비대면으로 새로 계좌를 만드는 게 이익이다. 가령 NH투자증권 MTS를 계속 사용하던 고객도 신한금융투자 계좌를 비대면으로 만들고 MTS 애플리케이션을 깔면 수수료 없이 거래할 수 있다. 사실상 증권계좌에서도 '계좌이동제'가 도입돼 경쟁사 고객 빼앗아오기가 시작된 것이다.
증권사들이 MTS 거래 수수료까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서 브로커리지 수익은 더욱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B증권사 관계자는 "기존 0.15% 정도 받던 수수료를 포기하는 것은 수익을 깎아먹는 출혈경쟁"이라면서도 "주식 관련 브로커리지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우니 다른 금융상품 판매나 자산관리 수익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을 아꼈다.
수수료를 없앤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은 증권사에는 부담이지만 투자자는 당장 높아진 투자수익률로 이득을 볼 수 있다.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회전율(평균 자산 대비 매매대금) 2000% 이상인 단타 고객의 투자수익률은 거래 수수료와 세금 때문
그러나 증권사의 수익성 저하는 장기적으로 볼 때 비용 절감을 위한 직원 줄이기로 이어지면서 고객 서비스 질 저하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제림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