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의 주 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26일 “한진해운이 내년까지 많게는 1조 7000억원 부족자금이 예상되는데 회사 측 자구안은 4000억원에 불과하다”며 법정관리 가능성을 시사했다.
해운업계에서는 이같은 산업은행 기류에 큰 변화가 없다면 30일 한진해운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 중단에 따른 법정관리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국내 1위 해운사인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17조원으로 예상되는 연관 산업 피해가 발생할 전망이다.
◆산은 대한항공 증자 계획만 인정
산업은행은 한진해운이 지난 25일 제출한 자구안 중 대한항공 4000억원 유상증자 방안만 현실성 있는 계획으로 평가했다. 한진해운은 ▲대주주 대한항공을 통한 유상증자(4000억원) ▲미국 롱비치터미널 매각(600억원) ▲추가 자금 부족시 1000억원 한도 계열사 자금 지원(조양호 한진회장 유상증자 참여) 등 총 5600억원 어치 자금 조달 계획을 산은에 전달했다.
실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아니지만 각각 1000억원과 2000억원대 자금 경감 효과가 있는 27% 용선료 조정과 국내 선박금융 원금 상환 유예 방안도 포함됐다.
여기에 대한항공 보유 지분(33.23%)에 대한 무상 감자를 수용해 대한항공을 매개로 한 조 회장 일가의 한진해운 경영권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뜻을 밝혔다. 이자율 조정 등을 통해 대한항공이 보유한 한진해운 영구채(2200억원)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계획도 담았다.
산은 관계자는 “정상(moderate) 상황을 가정했을 때 내년까지 필요하다는 자금 부족분 1조원 자체도 용선료 협상과 선박금융 원금상환 유예 협상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전제로 한 것이라 믿기 힘들다”고 밝혔다. 산업은행 입장에서 볼 때 한진해운이 만들어온 자구안이 매우 불충분하다는 설명이다.
◆6000억원 추가 지원 놓고 갈등
한진해운은 대한항공 유상증자를 토대로 나머지 최소 6000억원의 부족자금을 채권단이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조양호 한진 회장 유상증자를 포함한 1000억원 어치 계열사 지원과 관련해서는 6000억원 이상 채권단 자금 지원이 먼저 이뤄진 후 향후 추가 부족자금이 발생할 경우 추진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산은과 등 채권단은 이 대목에서 결정적인 실망감을 드러냈다.
산은 관계자는 “조 회장의 사재 출연이 대세에 영향을 줄 수도 없었지만 그마저도 규모를 설명하지 않았다”며 “심지어는 먼저 채권단이 자금을 지원한 후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가서 생각해보겠다’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계열사를 통한 추가 지원 시기에 대해 한진해운은 “제반 법규상 제약을 고려해 2017년 7월 중 채권단과 협의해 결정하겠다”며 “신규 지원자금에 대해서는 채권단의 신규자금에 준해 (의결권 등을) 처후해달라”고 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대한항공 유상증자 4000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내용은 시기와 규모, 현실성을 담보할 수 없어 실질적인 자구안으로 보지 않는다”며 “채권비율 기준 75% 이상의 채권단동의가 필요한데 채권비율 60%인 산업은행이 설령 동의한다 해도 다른 시중은행들 중 동의할 곳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한진 고위 관계자는 “자구안에 대한 채권단 요구 사안을 심사숙고하고 있다”며 “회사를 살릴 수 있는 긍정적인 방향을 잡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진해운은 추가로 2차 자구안을 낼 계획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양측은 비공식 채널을 통해 물밑 조율을 계속하고 있어 극적으로 양측이 절충할 가능성은 있다.
◆자율협약 종료시 법정관리
채권단이 30일 한진해운 자율협약 종료를 결의하면 한진해운은 용선료 조정·선박금융 협상·일부 사채 재조정 등과 무관하게 법정관리에 들어간다.
법원이 회생절차를 밟으면 산은 자회사가 된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을 합병해 새 해운사로 갈아탈 가능성이 높지만 청산 가치가 더 높다고 판단하면 국내 1위 해운사인 한진해운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법정관리시 한진해운은 물론 연관 산업인 조선·항만업과 하청업체들에는 메가톤급 후폭풍이 몰아친다.
한국선주협회에 따르면 한진해운 법정관리시 해운업계 예상 피해 금액은 총 9조 2400억원으로 1193명이 일자리를 잃는다. 부산항만 연관업, 무역업계까지 포함하면 17조원대 피해가 발생하고 2300여명이 실업 상태에 빠질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금융기관 차입금(8800억원), 항만 관련 업체 미지급금(6000억원
운송비 부담이 늘며 국내 수출가격도 0.7~1.2%까지 오르며 가격 경쟁력까지 깎아먹을 수 있다는 걱정도 제기된다.
[김정환 기자 / 정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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