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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코스피는 전일 대비 25.86포인트(1.25%) 내린 2037.87을 기록했다.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1215억원과 1150억원어치를 팔아치우며 지수를 끌어내렸다. 반면 개인은 2291억원을 순매수해 홀로 분전했다. 외국인은 특히 향후 증시를 어둡게 보는 듯 지수선물도 7470억원어치를 대거 순매도했다.
그동안 지수 상승을 견인했던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이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였다. 삼성전자 네이버 삼성물산 현대모비스 아모레퍼시픽 등이 상승세에 급브레이크가 걸리며 2% 이상 급락했다.
전날 유럽중앙은행(ECB)이 실망스러운 통화정책을 내놓으면서 유럽과 미국 등 글로벌 증시가 전반적인 약세를 보인 가운데 코스피도 하락세로 장을 시작했다. 오전 북한의 5차 핵실험 소식이 전해지면서 지수는 2030선까지 주르륵 밀렸다. 그동안 국내 증시는 핵실험을 비롯한 북한의 미사일 도발 행위 등 지정학적 리스크에 둔감한 편이었다. 한국 경제에 불확실성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외환시장에 충격을 주는 경우는 있었지만 증시에서는 북핵 도발에 대한 학습효과가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핵실험이 한국 증시의 펀더멘털을 훼손할 정도의 악재는 못 됐기 때문이다. 북한이 처음 핵실험을 실시했던 2006년 10월 9일에는 코스피가 2.41% 급락했다. 하지만 이후 2009년, 2013년, 2016년 등 세 차례에 걸친 핵실험 때는 당일 지수 하락률이 0.2%대에 그치는 등 영향이 미미했다.
오히려 2011년 12월 19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코스피 -3.43% 하락)이나 2015년 8월 20일 서부전선 기습 포격(-2.01%) 때가 증시 하락폭이 더 컸다. 체제 붕괴나 전면전 형태로 발전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북한발 악재는 투자심리에 영향을 미칠 뿐 증시에 오래 지속되는 소재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과거에도 북한발 이슈로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을 때마다 2~7거래일 내에 과거 수준으로 회복됐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조익재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일시적으로 주가를 흔들 수 있겠지만 최근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이 최고치에 달하는 등 대외여건이 좋은 상황이라 외국인 자금의 이탈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증시에서는 북핵 도발이 워낙 여러 차례 반복된 이벤트라 큰 영향이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윤남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도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이미 만성화돼 이벤트로서 효과가 떨어졌다"며 "오히려 장중에 주가가 빠지게 되면 그것을 매수 기회로 삼는 투자자들도 많아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 핵실험이 촉발한 하락장세가 대외악재·거시경제 상황 등과 맞물려 복합악재로 변신할 수 있다는 점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1월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때는 외국인이 당일 1630억원을 순매수하면서 증시에 악재로 인식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중국 증시 급락과 위안화 평가절하 등 대외 악재가 연거푸 터져나오면서 다음날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1062억원을 순매도한 이후 열흘 동안 2조원 이상을 팔아치우며 증시 급락을 이끌었다.
실제로 이날도 북한 핵실험보다는 간밤 발표된 ECB 정책에 대한 실망감과 삼성전자 약세가 시장 하락세를 부추겼다. ECB는 전날 주요 정책금리를 모두 동결하고 추가 완화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양적완화 연장을 기대했던 글로벌 증시가 일제히 약세 흐름을 보였다. 여기에 최근 코스피 상승을 이끌었던 삼성전자가 외국인의 매도세에 급락하자 지수 전체에 부담을 안겼다.
양기인 신한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9일 북한 정권수립기념일 때마다 이 정도 이벤트가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측됐던 사건"이라며 "북한 5차 핵실험 자체보다는 연속 상승에 따른 피로감, 추석 연휴를 앞둔 눈치 보기, ECB의 금리 동결 등이 복합적으로 시장에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해석했다.
[한예경 기자 / 박윤구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