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한미약품은 ‘꽃놀이패’를 쥔 것처럼 보였다.
지난해 한미약품의 기술이전료는 무려 8조원에 달했다. 일라이 릴리사와 면역질환치료제 기술에 대한 이전계약, 베링거인겔하임사와 내성표적폐암신약 기술에 대한 이전계약, 사노피사와 지속형 당뇨신약 기술에 대한 이전계약, 얀센사와 지속형 당뇨 및 비만 신약 기술에 대한 이전계약 등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하지만 현재 한미약품은 이 가운데 7조원 규모의 계약에 발목이 잡혔다. 지난 9월 베링거인겔하임과의 계약은 ‘늑장공시’ 논란속에 임상중단을 맞았고, 10월에는 사노피와 계약한 당뇨신약 임상3상 일정이 내년으로 연기됐다.
그리고 7일에는 또다시 얀센사와 계약한 임상의 유예소식이 전해졌다.
제약바이오업계에서 임상 일정 변경이나 나아가 유예, 중단은 흔히 있는 일이다. 작년 다양한 기술수출 계약을 맺은 한미약품의 성과를 깎아내릴 수만은 없는 이유다.
하지만 문제는 이를 투자자들에게 알리는 '과정'이다. 한미약품은 현재 베링거인겔하임 늑장공시 건으로 거래소와 금융당국을 거쳐 검찰 수사 발표를 앞두고 있다. 사노피 건은 어떠한가. 한미약품은 해당 계약건의 연기에 대해 ‘생산일정 지연’이라는 이유만으로 투자자를 이해시키려 했고, 관련 공시는 아예 하지 않았다. 더욱이 해당 계약에 반환금 등 페널티 조항이 있음을 올해에야 공시한 사실이 알려지자 ‘화가 난’ 한국거래소는 계약금 반환조항과 기술계약 관련 중요변경사항을 의무공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개선안을 마련하고 각사에 공문을 보냈다.
얀센사와 계약한 임상에 대한 유예소식을 전하는 과정도 매우 매끄럽지 못했다.
한미약품은 오전에 일명 ‘지라시’로 주가가 폭락하고 해당내용을 확인한 한 언론사가 임상중단 사실을 보도할 때까지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한미약품은 해당 보도가 나간 직후에야 보도자료를 돌리고 뒤늦게 공시를 올렸다. 이마저 임상유예를 투자자들에게 알리려는 게 주목적이 아닌 ‘풍문 또는 보도에 대한 해명’이었다.
미국 임상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얀센은 지난달 30일 한미약품 신약인 JNJ-64565111의 임상시험 환자 모집을 중단했다. 한미약품은 최소한 일주일 전에 해당 신약의 문제를 인식했다는 얘기다. 거래소의 개선안을 공문으로 이미 전달받았음에도 아직 시행전인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는지, 베링거인겔하임 건처럼 이번에도 법망을 피해나갔다. 이미 늑장공시로 홍역을 치루고 처벌을 기다리고 있는 제약사의 행태로는 매우 부적절했다.
한국거래소도 문제가 있다. 거래소는 한미약품 ‘늑장공시’와 사노피 임상지연에 따른 사태 이후에야 계약금 반환조항과 마일스톤 등 주요 계약사항을 의무적으로 명기하는 방안을 마련했는데, 여기에도 ‘임상유예’에 관한 규정은 빠져있다. 이대로라면 회사가 다소 자의적으로 임상중단이 아닌 ‘유예’로 분류할 경우에도 공시하지 않아도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 거래소 관계자는 이에 대한 물음에 “금융당국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개선안에는 ‘임상유예’ 조항이 빠져있다”며 “이에 대해서는 (포함할 지 여부를) 내부적으로 논의해 보겠다”고 답했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
한미약품은 지난해 8조원대 기술수출로 최근까지 막대한 직간접적 반사이익을 누렸다. 1년만에 완전히 뒤바뀐 상황은 안타깝지만, 시장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투자자들에게 실패 또는 차질을 알리는 과정에 있어 최소한의 성의가 필요하다.
[디지털뉴스국 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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