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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건축심의를 통과했지만 여러 문제로 7년째 사업이 표류 중인 서울 노량진 지역주택조합 사업지 전경. [매경 DB] |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지역주택조합 제도가 법의 허점을 이용한 악덕 사업자들 때문에 변질되고 있다. 기초도 마련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조합원 모집에 나섰다 사업이 지체돼 조합원 피해를 야기하는가 하면 돈만 챙기고 사업은 방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역주택조합이란 같은 지역 거주민 중 무주택자와 전용면적 85㎡ 미만 1주택자가 모여 조합을 구성한 후 토지를 매입하고 시공사를 선정해 아파트를 지어 입주하는 식의 사업이다. 청약통장이 필요없고 중간 단계 마진을 아껴 일반분양 아파트보다 10~20% 저렴한 게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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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역주택조합은 사인(私人) 간 계약이기 때문에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사업이 지체되면 추가 부담금이 발생하는 데다 조합원 간 갈등 위험도 높다. 무엇보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철저한 관리감독을 받는 재건축·재개발 조합과 달리 지역주택조합은 사적 단체인 탓에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놓였다. 조합장이나 추진위원장 등 집행부가 작정하고 조합원에게 피해를 줘도 이를 구제할 법적 장치가 마땅치 않다.
지역주택조합 사업 추진에서 가장 빈번한 문제는 허위 과장 광고다. 사업 대상 토지에 대한 권리를 제대로 확보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조합원을 모집하는 게 대표적이다. 토지 매입금의 10%만 계약금으로 낸 상태지만 조합원 모집 광고에는 '토지 100% 확보' 등 확정적 문구를 써 현혹시킨다.
대형 건설사 시공이 확정됐다는 표현도 단골로 등장한다. 마치 해당 건설사가 분양하는 듯하지만 실제 건설사의 시공참여의향서만 접수한 수준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시공참여의향서는 건설사 입장에서 그냥 검토한다는 수준의 원론적 입장 표현으로 아무런 강제력이 없다"고 전했다.
경기도 고양시 B지역주택조합 집행부는 토지를 확보하지 않고 조합원을 모집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해당 토지 개발 권한이 이미 다른 업체에 있다는 점이다. 현 상황에서는 주택을 짓는 데 필요한 인허가를 취득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대형 건설사가 짓는다며 조합원 모집 광고 중이다. 해당 건설사도 사업 참여 의지가 전혀 없다. 전문가들은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할 때 토지의 전부 또는 일부가 다른 개발 계획에 포함되지 않았는지와 토지매매 계약서를 꼭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역주택조합은 사업 절차도 투명하지 못하다.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업무대행사를 통해 각종 인허가나 용역 발주 등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업무추진비 대부분이 대행사를 통해 집행되므로 조합 장부만으론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알 수 없다. 집행부가 업무추진비를 횡령해도 입증이 어렵다.
토지 확보나 시공사 선정 등 사업을 하는 시늉이라도 내는 조합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아예 계약금만 챙기고 잠적하는 경우도 있다. 한 건설사 지역주택조합 업무 관계자는 "업무추진비만 노리고 조합원을 모집하는 악덕 업무대행사도 알고 보면 그 관계자가 조합장이나 추진위원장을 맡는 경우가 상당수"라고 전했다.
한 번 가입하면 탈퇴하기도 어렵다. 국토부의 '지역·직장주택조합 표준규약서'에 따르면 조합원은 임의로 조합을 탈퇴할 수 없고 부득이한 사유가 발생했을 때에도 조합 총회나 대의원회의 의결로 탈퇴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설사 탈퇴하더라도 업무추진비는 물론이거니와 계약금까지도 이미 사용됐다면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허점이 많다 보니 계획대로 사업을 성사시키는 지역주택조합은 소수에 불과하다.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2005~2015년 설립인가를 받은 155개 지역주택조합 중 현재 입주까지 완료된 조합은 34개에 불과하다.
정부와 정치권은 지역주택조합 제도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개선안을 내놨다. 지난해 1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주택법 개정안에는 조합 탈퇴 시 비용을 환급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기고 지방자치단체에서 조합 설립을 보다 까다롭게 심사할 수 있게 했다.
문제는 법 개정안이 오는 6월 3일 이후 설립되는 조합부터 적용된다는 점. 기존 조합은 여전히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남는다. 법망을 피하기 위한 쏠림 현상도 우려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법이 개정되기 전 설립된 조합들도
보완과 관리감독 강화를 통해 지역주택조합을 존속하겠다는 중앙정부 입장과 달리 일부 지자체에서는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서울 부산 인천 광주 경기도 등 전국 8개 광역지자체는 지난해 10월 국토부에 지역주택조합 폐지를 건의했다.
[김기정 기자 / 정순우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