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투자 비밀수첩-149]
PBR 20배 넘는 기업 주가는 달리는데
PBR 1배도 안되는 회사 주가 부진한건
변덕 심하고 냉정한 주식시장의 생리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CIO)은 한국 증시에서 대표적인 보수론자로 꼽힙니다. 스스로를 소심하다(?)고 하는 그는 시장에서 소외돼 싸게 거래되는 주식만 골라 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사실 그가 스스로를 소심하다고 부르는 것은 일종의 겸양의 표현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그만의 가치투자 스타일로 10년간 150%가 넘는 투자수익률을 거뒀으니까요. 10년 전에 그를 믿고 1억원을 맡긴 사람은 지금쯤 자산이 2억5000만원이 넘었다는 얘기지요. 10억원을 맡겼다면 25억원이 넘었겠네요.
오늘은 최근 이 부사장과 나눈 대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증시의 해묵은 논란인 성장주와 가치주 투자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 합니다. 사실 내용 자체는 크게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이 글에서 탁월한 대안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그냥 가볍게 읽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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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놀라운 것은 넷플릭스·아마존을 비롯한 고PBR 주식들의 가치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는 거지요. 2013년 주당 250달러 안팎이었던 아마존 주가는 최근 주당 1000달러 안팎에 거래됩니다. 그리고 이 기간에 아마존 PBR는 계속 오르는 추세였어요. PBR가 두 자릿수 이상인 상태로 주가가 계속 갔다는 거지요. 2013년 "아마존 PBR가 너무 비싸서 이 주식은 살 수 없다"고 판단한 투자자는 4년 만에 주가가 4배로 뛰는 엄청난 성장주 기회를 놓쳐버린 셈이 된 거지요.
여기서 투자자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이 부사장 같은 보수적인 투자자에게 아마존은 그때도 투자할 수 없고, 지금도 투자할 수 없는 종목입니다. PBR가 1을 밑도는, 즉 시가총액이 청산가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기업이 여럿 있는데 PBR가 20배를 넘는 기업에 돈을 태울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PBR가 1을 밑도는 싼 종목을 골라 투자하면 반드시 돈을 벌 수 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얼마 전 넥센이라는 지주사 주가가 하루 동안 주가 변동이 극에 달해 화제가 된 적 있습니다. 지난 8월 29일 넥센은 그룹 내 비효율적 요인을 최소화하고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넥센엘엔씨를 흡수합병하기로 했다고 공시했어요. 넥센과 넥센엘엔씨의 합병 비율은 1대8.8793666이었는데, 다음날인 30일 시장에서는 이 합병 건을 엄청난 호재로 받아들였습니다. 장 초반 넥센 주가가 전일 대비 20%나 뛰기도 했어요.
넥센은 한국 증시 대표적인 저평가 주식입니다. PER가 5배를 밑돌고, PBR도 6배 아래에서 거래됩니다. 쉽게 말해 이 회사 주식을 통째로 사들이면 5년 안에 본전을 다 뽑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도 주가가 위로도 아래로도 움직이지 않은 채 한참의 시간을 보냈는데, 오랫만에 굵직한 공시가 나오니까 저평가된 주가가 한꺼번에 움직인 것이지요. 시장 관심이 한꺼번에 몰리면서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장 초반 강세였던 넥센 주가 탄력이 시간이 흐를수록 지지부진해지더니 결국 넥센 주가는 이날 전일 대비 소폭 떨어진 상태로 마감했습니다. 장 초반 주가가 치솟는 것을 보고 전일 대비 20% 오른 가격에 주식을 사들인 투자자는 하루 만에 20%나 손실을 본 셈입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문제가 있는 합병이었을까요. 넥센엘엔씨는 그룹 내 물류를 전담하는 회사입니다. 물류사업 특성상 내부거래가 많은 구조지요.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양계장을 하는 회사가 계란찜을 하는 자회사를 가지고 있어요. 이 양계장 회사는 계란을 계란찜 자회사에 넘기기 전에 물류창고 자회사를 거치게 합니다. 그리고 소폭의 이윤을 남기고 계란을 물류창고에 넘긴 이후 이윤을 많이 붙여서 계란을 창고에서 계란찜 회사로 넘기게 하는 거죠. 그러면 가운데 있는 물류창고 회사는 별로 하는 일도 없이 돈을 많이 벌게 되겠죠? 문재인정부에서 이 같은 기업 내부거래를 철저하게 들여다볼 기색을 내비치자 넥센이 오해를 덜기 위해 선제적으로 움직인 셈이에요. 하지만 넥센엘엔씨를 무리한 값에 비싸게 사들여 넥센이 엄청난 피해를 봤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넥센 주식이 저평가된 상태여서 합병 비율이 넥센에 불리하게 정해졌다는 얘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소규모 딜에 불과한 이번 합병으로 넥센이란 회사가 심각하게 타격을 받을 정도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한마디로 이날 넥센 주가의 엄청난 변동성은 '시장이 아직 넥센이란 회사가 저평가에서 탈출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수사로 요약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도 넥센 주가는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이런 걸 보면 주식 참 어렵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미국에 있는 어떤 회사는 PBR가 20배를 넘어도 계속 가는데, 한국에 있는 어떤 회사는 PBR가 1도 안 되는 채 빌빌 기어야 하다니요. 주가라는 게 기업 성장성을 고려한 여러 변수가 복잡하게 영향을 미치는 '고차방정식'이라고 하지만 개인투자자들이 접근하기에는 적잖은 물리적 장벽이 있는 게 사실이지요.
여기서 하나 우리는 마음의 결정을 하고 가야 합니다. 주식시장을 바라보는 잣대 같은 것입니다. 시장이 좋을 때는 어떤 주식도 갈 수 있습니다. 앞서 아마존 사례에서 봤듯이 PBR가 20배가 넘어도 갈 주식은 갑니다. 뾰족한 이유가 없더라도 시장이 이유를 만듭니다.
문제는 장이 좋지 않을 때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PBR가 20배가 넘는 기업이 있는데 주가가 10분의 1로 떨어진다면 PBR가 2배가 되겠지요(아마존 주가가 이렇게 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한국 코스피 PBR가 1배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보는 시각에 따라서 PBR가 2배인 것도 비싸게 보일 수 있습니다. 왜냐면 시장은 야박해서 주가가 내리면 또 그에 맞는 논리를 만들어 내거든요. 성장 스토리가 끝났다, 호시절이 갔다 등등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내 주가가 왜 하락하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러다 보면 극단적으로 말해 PBR 20배 시절에는 아무도 비싸다고 안 하는 주가가, PBR가 2배가 됐는데 비싸다고 얘기하는 이상한 현상도 볼 수 있게 되지요.
그런데 PBR가 0.6배인 회사가 있다고 해봐요. 이 회사 주가가 10분의 1이 날 수 있을까요. 냉정하게 말해 힘듭니다. 그러면 PBR가 0.06배가 되는데, 아무리 극심하게 저평가된 회사라고 해도 시장이 이 정도의 왜곡은 허용하지 않습니다. 회사가 망할 정도의 극심한 타격을 입은 게 아니라면 주가가 저평가 상태에 있는 기업은 주가 하락 시 적정한 시점에서 반발매수세가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기업가치와 주가가 단기적으로는 별 영향 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도 시간이 흐르면 절대 그렇지 않거든요.
만약 본인이 '난 적게 먹더라도 잃지 않는 투자를 하겠다'는 스타일이라면 저평가된 주식을 사서 장기 보유하는 전략을 펴야 합니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투자 방식입니다. 북핵 위기가 불거지면 방산주 테마를 등에 업은 어떤 회사는 하루 만에 20%씩 주가가 올라가는데, 내 주식은 별 거래도 없이 매일 지지부진 기어 다니는 걸 봐야 하거든요. 하지만 이 방식의 투자로 저평가된 종목 몇 곳에 돈을 묻어놓으면 적어도 주가가 반 토막 이상 깨지는 불상사는 막을 수 있습니다. 특히 저평가 주식인 데다 배당 매력까지 있는 종목이라면 이런 식의 투자를 할 때 안심이 됩니다. 예를 들어 지금 배당수익률을 현 주가 수준으로 꼬박꼬박 연 4%를 주는 종목이 있다고 해보세요. 만약 주가가 반 토막 나면 배당수익률이 8%로 올라갑니다. 기준금리가 1.25%인 걸 감안하면 엄청난 고배당이지요. 틀림없이 주가가 그 정도로 빠지기 전에 매수세가 들어오기 마련이죠. 이 회사 주가가 PBR 0.5배 안팎에 거래된다면 주가가 더 오를 여지도 있지요. 그리고 이런 주식이 한번 주목받으면 또 무섭게 주가가 오르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동안 꽁꽁 묶였던 굴레가 벗겨지면 시장 관심을 한 번에 받으면서 눌렸던 주가가 일거에 튀는 것이지요.
누누이 말하지만 선택은 본인이 해야 합니다. 결국 대다수의 주식투자자는 돈을 벌기 위해 주식을 하는 것이고(기업지배구조
[증권부 홍장원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