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주회사 된 지주회사 ◆
"지분 100%를 사야 한다는 식으로 기업의 인수·합병(M&A)을 어렵게 만드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규제다."
서울 소재 사립대의 한 경영학과 교수는 현행 지주사 요건을 담은 공정거래법 제8조 2항을 "기업 성장을 막는 괴물 같은 조항"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조항은 지주사의 손자회사가 증손회사를 보유할 때 해당 기업의 지분 100% 보유를 의무화하고 있다. 재계에선 이 조항 때문에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만한 기회를 수도 없이 놓쳤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 조항으로 M&A가 올스톱된 곳은 SK다. SK는 '지주사 SK→SK텔레콤→SK하이닉스'의 구조로 SK하이닉스가 손자회사다. SK하이닉스는 최근 반도체 호황에 따라 이익이 쌓여 그룹 내 현금 창출력이 가장 좋지만 M&A가 불가능한 구조다.
SK는 2010년 삼성과의 M&A 정면 대결에서도 지주사 요건 때문에 '쓴잔'을 마셨다. 비상장사인 메디슨 M&A 당시 법적 소송 끝에 해당 업체 지분이 28.3%만 매물로 나오는 바람에 SK는 눈물을 머금고 M&A 시장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지주사로 전환한 SK 입장에선 비상장사 지분 40% 보유 의무 조항에 딱 걸린 것이다.
또 SK는 음원 서비스 국내 1위 업체이자 성장성이 풍부한 로엔엔터테인먼트(로엔)도 포기해야만 했다.
한솔그룹은 지난 6월 지주사 요건 충족을 위해 손자회사인 한솔넥스지를 매각했다. 매각 전 한솔그룹은 '한솔홀딩스→한솔인티큐브→한소시큐어' 구조를 갖추고 있었는데, 한솔인티큐브와 한솔시큐어가 각각 한솔넥스지 지분 20.2%, 18.4%씩 보유하고 있었다. 지주사의 손자회사인 한솔시큐어가 또 다른 손자회사인 한솔넥스지를 소유한 상태인데, 현행법상 손자회사는 다른 손자회사 지분을 보유할 수 없다. 보유하기 위해선 지분 100%를 소유해야 한다. 이에 한솔그룹은 지주사 체제 완성의 걸림돌이었던 한솔넥스지를 아예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 같은 해외 자본시장에서도 지주사의 자회사 지분율과 관련해 의무 조항은 없다. 다만 지주사가 자회사나 손자회사를 보유할
[문일호 기자 / 윤진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